휴대전화 액정화면이 깨졌습니다. 내내 애를 먹으며 천년 같기만 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시커먼 화면을 겨우겨우 더듬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자메시지 왔다는 신호음은 들리는데 도대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습니다. 캘린더 앱에 담아둔 일정도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칼럼과 기획기사 거리를 끼적여둔 메모장도 열어볼 수가 없습니다.
때로 치미는 분노를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조마조마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자극에 크게 폭발하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덜돼서일 테죠. 어딘가에 숨죽여 숨어 있는 분노가 두렵기도 합니다. 폭발하고 나서 뒷수습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요. 수치심과 우울감이 상승작용하며 경쟁을 벌입니다. 자, 이제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미국 신문이 한국인에 대해 보도했었죠. “한국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 상태로 보인다.” 원인으로는 직장에서의 혹사, 상시적 불안, 과도한 스트레스를 꼽았죠. 그래서 “한국에서 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학업 압박이 높아지고 직장인들은 퇴근 후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고 보도했네요.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을 바꾸더라도 마음 역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절에라도 들어가서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무념무상의 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108배는커녕 잠시 눈 감고 생각에 잠길 시간도 없네요. 템플스테이는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어리석은 중생은 그조차도 마음이 서질 않네요. 대신 ‘일체유심조’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모든 게 마음에 달린 법, 이 마음 잘 다독거려 길들이리라 다짐하며 거액의 수리비를 지불했습니다. 아 이제, 이 전화기는 저와 아픔을 함께한 동반자입니다. 오랫동안 이 전화기와 함께 면벽수행하리라 다짐합니다.
김진철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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