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오래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갔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전시작품 포스터를 샀습니다. 따로 한 방을 차지하던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 중 하나였죠. 오랫동안 보관통 속에 묵히고 있던 이 포스터를 몇년 전 이사를 하면서 꺼냈습니다. 나도 거실에 그림 하나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액자 가게에 들고 갔습니다.
그럴듯하게 액자를 만들어 손바닥만한 거실 벽에 착 걸었습니다.
“어때? 이제 우리집에서도 예술적 향기가 나지 않아?”라고 남편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집요하게 달달 볶아서 원하는 답변을 듣고야 말았겠지만 저도 곧 입을 다물었습니다. 오래돼서 페인트가 벗겨진 갈색 문짝과 바닥, 동향이라 정오만 되면 어두컴컴해지는 실내에 걸린 그림이 한술 더 떠 어둡고 음울하니 참, 이걸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칙칙함의 시너지 효과라고 해야 할지 모를 오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그림이 걸린 뒤 집을 방문한 어머니는 이렇게 감상 소감을 한마디로 날리셨죠. “참, 너도 참, 그림을 걸어도 참…”
‘숭고’하기 이를 데 없는 로스코의 그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중학생 조카가 그린 정물화에 빼앗기는 굴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집 거실은 어설프지만 귀여운 활기를 조금이나마 얻었더랬죠.
한때는 유명 작가의 복제 명화들이 카페나 집 벽을 채우곤 했지만 이제는 이름값에 기댄 ‘예술적 향기’를 찾는 사람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취향도 다양해지고 안목도 높아졌다는 이야기겠죠. 환영할 만합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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