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로스코의 굴욕

등록 2012-03-08 16:48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오래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갔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전시작품 포스터를 샀습니다. 따로 한 방을 차지하던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 중 하나였죠. 오랫동안 보관통 속에 묵히고 있던 이 포스터를 몇년 전 이사를 하면서 꺼냈습니다. 나도 거실에 그림 하나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액자 가게에 들고 갔습니다.

그럴듯하게 액자를 만들어 손바닥만한 거실 벽에 착 걸었습니다.

“어때? 이제 우리집에서도 예술적 향기가 나지 않아?”라고 남편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집요하게 달달 볶아서 원하는 답변을 듣고야 말았겠지만 저도 곧 입을 다물었습니다. 오래돼서 페인트가 벗겨진 갈색 문짝과 바닥, 동향이라 정오만 되면 어두컴컴해지는 실내에 걸린 그림이 한술 더 떠 어둡고 음울하니 참, 이걸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칙칙함의 시너지 효과라고 해야 할지 모를 오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그림이 걸린 뒤 집을 방문한 어머니는 이렇게 감상 소감을 한마디로 날리셨죠. “참, 너도 참, 그림을 걸어도 참…”

‘숭고’하기 이를 데 없는 로스코의 그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중학생 조카가 그린 정물화에 빼앗기는 굴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집 거실은 어설프지만 귀여운 활기를 조금이나마 얻었더랬죠.

한때는 유명 작가의 복제 명화들이 카페나 집 벽을 채우곤 했지만 이제는 이름값에 기댄 ‘예술적 향기’를 찾는 사람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취향도 다양해지고 안목도 높아졌다는 이야기겠죠. 환영할 만합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박정희의 또다른 ‘장물’ 청구대학
[단독] 국정원 ‘후쿠시마 방사능 유입 경고’ 막았다
쿵·쿵…6차례 발파…구럼비 해안 화약냄새로 뒤덮여
새누리 시스템 공천? 친박에겐 너그러운 ‘도덕성 잣대’
삼성에버랜드 ‘재벌 웨딩홀’ 시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