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 위치한 ‘더 스쿨’에서 강사로 활동중인 디제이 사일런트의 디제잉 모습.
[매거진 esc] 클럽 은퇴 십년차 40대 여기자의 완전초보 디제잉 도전기
“하실 수… 있겠어요?”
칼바람 불던 지난 24일 오후 서울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에 위치한 ‘더 스쿨’ 문을 열자 최병철 원장은 조심스레 기자에게 물었다. 디제잉을 배우는 층이 20대 클러버들뿐 아니라 30대 직장인들까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지만 40대 ‘아주머니’가 디제잉을 배우러 오는 건 2006년 개원 이래 처음인 듯싶었다.
“하하, 그럼요. 저도 한때는 놀았다면 놀았는걸요.”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다. 홍대 앞 ‘발전소’ ‘명월관’이 성업하던 1990년대 중후반, 그러니까 클럽이 ‘록카페’라고 불리던 선사시대쯤 클럽 출입을 뻔질나게 했다. 하나 여기서 10여년 전의 추억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더 어색하게 스크래칭 흉내를 내자 눈치 빠른 오늘의 강사 디제이 사일런트(본명 유주환)는 조용히 강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기본적으로 취향·상황에 맞춰
음악을 들려주는 작업이죠
기술보다 중요한 건 선곡이에요” 강의실은 세개의 디제잉 장비 세트가 놓여 있었다. 한 세트는 두개의 엘피(LP)데크(턴테이블)와 두개의 시디(CD)데크, 음원들을 섞는 믹서와 여기에 연결된 모니터, 그리고 스피커로 구성돼 있다. 디제잉의 대중화에 기여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최근에는 엘피데크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아날로그적인 스크래칭의 맛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엘피 디제잉도 레슨을 한다. “최근에는 초보자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장비들이 늘어나서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아요. 마음먹고 바짝 연습하면 한달 정도면 어느 정도 믹싱이 가능해지죠. 그보다 중요한 건 음악을 많이 듣는 거예요. 디제잉이란 게 기본적으로 내 취향이나 어떤 상황, 분위기에 따라서 음악을 선곡해서 들려주는 작업이거든요. 내 음악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면 한마디로 밑천이 금방 드러날 수밖에요.” 중학교 때부터 턴테이블로 디제잉을 시작한 디제이 사일런트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지만 지산록페스티벌 등 대규모 축제나 파티의 디제잉뿐 아니라 프로듀서로 음반 작업 등도 활발한 중견 디제이다. 간단한 이론 설명을 들은 뒤 장비 앞에 앉았다. 얼추 오륙십개는 되어 보이는 버튼과 스위치 앞에서 바짝 쫄았는데 강사가 짜잔! 전자 키보드만한 소형 장비를 꺼낸다. 데크와 믹서를 결합한 컨트롤러다. 기능의 단순화와 저렴한 가격으로 아마추어 디제이들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데 기여한 주인공이다.
큐, 플레이, 페이더, 이퀄라이저
허둥지둥 엇박자여도
이게 바로 디제잉 맛이네 “댄스뮤직은 기본적으로 8마디, 16박자 구성입니다.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셋둘셋넷, 넷둘셋넷, 이렇게 박자가 반복되면서 변주가 되죠. 처음에 드럼이 쿵쿵쿵쿵 16박자를 치고 나오면 그다음 베이스라인이 16박자 나오고 그다음 멜로디가 추가되는 식이죠. 그러니까 첫 곡의 16박자 리듬이 끝나는 순간 옆 데크의 음악이 들어가면 됩니다.” 플레이에 앞서 ‘큐’를 지정해야 한다. 큐는 원곡에서 플레이를 원하는 지점이다. 턴테이블을 이용할 때는 디제이의 감각으로 큐포인트를 지정해야 했지만 디지털 그리드가 음파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요즘은 모니터를 보면서 쉽게 큐를 지정할 수 있다. 일단 노래의 맨 앞부분을 큐포인트로 지정했다.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셋둘셋넷, 넷둘셋넷, 플레이!” 이런이런, 16박자를 마치면서 옆 데크의 큐포인트 플레이를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 넷둘셋‘넷’에서 플레이를 누른다. 어디 가서 음치 소리를 들을지언정 박치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나였는데,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네다섯번 실수를 반복하다가 강사의 끈기 있는 격려 덕에 얼추 박자를 맞췄다. 모니터 속 음악 파일을 보니 익숙한 가요 제목이 눈에 띄어 “쉬운 가요로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니 “가요들은 기본적인 16박자 룰을 벗어난 경우가 많아 입문용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16박자에 충실한 하우스 장르인 댄스에어리어의 ‘AA 24/7’, 카르트 블랑슈의 ‘두 두 두’를 데크에 걸고 박자에 맞춰 믹싱을 해봤다. A데크의 쿵쿵쿵쿵, 촤촤촤촤 리듬에 B데크의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얹혀진다. 음, 그럴듯한데? “이제 페이더와 이퀄라이저를 써볼까요?” 페이더는 영화의 ‘페이드인’ ‘페이드아웃’처럼 음악이 스며들 때 서서히 볼륨을 높이면서 들어가고 줄이면서 나오도록 하는 기능. 다음 곡의 플레이를 누른 직후 페이더와 저음역대를 조절하는 이퀄라이저의 ‘로’ 버튼을 16박자에 맞춰 점점 키우니 드라마틱한 효과가 덧입혀진다. 여기까지가 아주 기초적인 믹싱의 기본이다. 물론 오른쪽 왼쪽 데크를 옮겨가며 매끄럽게 스위치를 조절하는 과정은 허둥지둥이지만 서너 곡을 이어가니 어깨가 움직이고 발이 까딱여진다. 이때 디제이 사일런트가 선곡한 야주의 ‘돈 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헉! ‘이것은 언니가 놀던 시절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곡!’ 무대, 이거, 어디 갔어. 10여년간 파묻혀 있던 댄스 본능이 뛰쳐나오는 순간,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제 수업 시간입니다.” 배낭을 메고 강의실에 들어온 이준석(29)씨는 두달째 디제잉을 배우고 있는 직장인이다. “학생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직장 다니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겨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취미생활이지만 계속하게 되면 투잡도 생각하고 있어요.” ‘더 스쿨’에는 이씨처럼 디제잉을 취미로 배우는 직장인 수강생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문 디제이나 디제이 쿠(구준엽), 디제이 류(류승범)처럼 연예인들의 영역이라고만 여겨지던 디제잉이 보통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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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가 데크와 믹서의 기능을 결합한 컨트롤러로 믹싱을 연습하고 있다.
음악을 들려주는 작업이죠
기술보다 중요한 건 선곡이에요” 강의실은 세개의 디제잉 장비 세트가 놓여 있었다. 한 세트는 두개의 엘피(LP)데크(턴테이블)와 두개의 시디(CD)데크, 음원들을 섞는 믹서와 여기에 연결된 모니터, 그리고 스피커로 구성돼 있다. 디제잉의 대중화에 기여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최근에는 엘피데크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아날로그적인 스크래칭의 맛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엘피 디제잉도 레슨을 한다. “최근에는 초보자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장비들이 늘어나서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아요. 마음먹고 바짝 연습하면 한달 정도면 어느 정도 믹싱이 가능해지죠. 그보다 중요한 건 음악을 많이 듣는 거예요. 디제잉이란 게 기본적으로 내 취향이나 어떤 상황, 분위기에 따라서 음악을 선곡해서 들려주는 작업이거든요. 내 음악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면 한마디로 밑천이 금방 드러날 수밖에요.” 중학교 때부터 턴테이블로 디제잉을 시작한 디제이 사일런트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지만 지산록페스티벌 등 대규모 축제나 파티의 디제잉뿐 아니라 프로듀서로 음반 작업 등도 활발한 중견 디제이다. 간단한 이론 설명을 들은 뒤 장비 앞에 앉았다. 얼추 오륙십개는 되어 보이는 버튼과 스위치 앞에서 바짝 쫄았는데 강사가 짜잔! 전자 키보드만한 소형 장비를 꺼낸다. 데크와 믹서를 결합한 컨트롤러다. 기능의 단순화와 저렴한 가격으로 아마추어 디제이들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데 기여한 주인공이다.
디제잉 장비 전문 매장 디제이코리아 전경.
허둥지둥 엇박자여도
이게 바로 디제잉 맛이네 “댄스뮤직은 기본적으로 8마디, 16박자 구성입니다.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셋둘셋넷, 넷둘셋넷, 이렇게 박자가 반복되면서 변주가 되죠. 처음에 드럼이 쿵쿵쿵쿵 16박자를 치고 나오면 그다음 베이스라인이 16박자 나오고 그다음 멜로디가 추가되는 식이죠. 그러니까 첫 곡의 16박자 리듬이 끝나는 순간 옆 데크의 음악이 들어가면 됩니다.” 플레이에 앞서 ‘큐’를 지정해야 한다. 큐는 원곡에서 플레이를 원하는 지점이다. 턴테이블을 이용할 때는 디제이의 감각으로 큐포인트를 지정해야 했지만 디지털 그리드가 음파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요즘은 모니터를 보면서 쉽게 큐를 지정할 수 있다. 일단 노래의 맨 앞부분을 큐포인트로 지정했다.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셋둘셋넷, 넷둘셋넷, 플레이!” 이런이런, 16박자를 마치면서 옆 데크의 큐포인트 플레이를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 넷둘셋‘넷’에서 플레이를 누른다. 어디 가서 음치 소리를 들을지언정 박치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나였는데,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네다섯번 실수를 반복하다가 강사의 끈기 있는 격려 덕에 얼추 박자를 맞췄다. 모니터 속 음악 파일을 보니 익숙한 가요 제목이 눈에 띄어 “쉬운 가요로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니 “가요들은 기본적인 16박자 룰을 벗어난 경우가 많아 입문용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16박자에 충실한 하우스 장르인 댄스에어리어의 ‘AA 24/7’, 카르트 블랑슈의 ‘두 두 두’를 데크에 걸고 박자에 맞춰 믹싱을 해봤다. A데크의 쿵쿵쿵쿵, 촤촤촤촤 리듬에 B데크의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얹혀진다. 음, 그럴듯한데? “이제 페이더와 이퀄라이저를 써볼까요?” 페이더는 영화의 ‘페이드인’ ‘페이드아웃’처럼 음악이 스며들 때 서서히 볼륨을 높이면서 들어가고 줄이면서 나오도록 하는 기능. 다음 곡의 플레이를 누른 직후 페이더와 저음역대를 조절하는 이퀄라이저의 ‘로’ 버튼을 16박자에 맞춰 점점 키우니 드라마틱한 효과가 덧입혀진다. 여기까지가 아주 기초적인 믹싱의 기본이다. 물론 오른쪽 왼쪽 데크를 옮겨가며 매끄럽게 스위치를 조절하는 과정은 허둥지둥이지만 서너 곡을 이어가니 어깨가 움직이고 발이 까딱여진다. 이때 디제이 사일런트가 선곡한 야주의 ‘돈 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헉! ‘이것은 언니가 놀던 시절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곡!’ 무대, 이거, 어디 갔어. 10여년간 파묻혀 있던 댄스 본능이 뛰쳐나오는 순간,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제 수업 시간입니다.” 배낭을 메고 강의실에 들어온 이준석(29)씨는 두달째 디제잉을 배우고 있는 직장인이다. “학생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직장 다니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겨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취미생활이지만 계속하게 되면 투잡도 생각하고 있어요.” ‘더 스쿨’에는 이씨처럼 디제잉을 취미로 배우는 직장인 수강생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문 디제이나 디제이 쿠(구준엽), 디제이 류(류승범)처럼 연예인들의 영역이라고만 여겨지던 디제잉이 보통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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