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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따로 없구나.”
오래전 집들이에 놀러 온 친구는 일갈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식탁에 놓인 송이 큰 분홍장미 다발을 보고 말이죠. 바랜 듯 빈티지한 느낌의 고급스러운 장미 다발들이 진주목걸이라면 그 꽃송이를 제외한 집안 모두가 돼지 목이었습니다. 싱크대부터 문고리까지 30년 된 나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낡은 구조에, 도배도 안 해서 누리끼리한 벽에, 청소도 안 된 지저분한 방바닥에, 우아하거나 상큼하거나 아기자기한 맛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집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꽃다발이라니, 친구의 소감이 막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요.
예나 지금이나 집 꾸미기 또는 살림에는 ‘금욕주의’로만 일관하는 저이지만 가끔씩 꽃시장이나 지하철역 꽃집 등에서 꽃이나 화분을 사는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있습니다. 식구들은 이런 저에게 “집 청소나 제대로 하라”고 핀잔을 주지만, 식탁이나 티브이 옆 테이블 위 화병에 꽂혀 있는 꽃들을 보노라면 이 돼지우리를 어떻게 치우나 하는 시름도 잠시 날아가고 어쩐지 나도 센스 있는 주부가 된 것 같은 뿌듯함마저 듭니다. 요즘은 개량을 통해 색은 화사하지만 향은 미약한 꽃들이 대종을 이루긴 하지만 가끔 향 진한 프리지어 같은 꽃을 만나 집에 들여놓으면 그 향기만으로도 집 안 분위기가 확 피기도 하지요.
한때 요리 쪽에 불던 배우기 바람이 요새는 꽃꽂이 쪽으로 옮아간다고 합니다. 바빠서 또는 비용부담 때문에 선뜻 꽃꽂이 강좌에 등록하기 힘든 분들을 위해 이번주 커버스토리를 마련했습니다. 세계적인 플로리스트 카트린 뮐러에게 한수 배워 보시죠.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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