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오르멍들으멍’ 중 어쿠스틱 공연을 펼치는 게이트플라워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여행
음악공연·생태여행·유쾌한 강연이 하나로 묶인 색깔있는 여행 ‘겟 인 제주’
제주에 가야 할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일상 탈출을 꿈꾸지만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은 이 재기 발랄한 여행 상품에 몸을 맡겨보자. 음악 공연과 생태여행, 유쾌한 강연이 어우러진,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투어 인 제주’(Great Escape Tour in Jeju, 겟 인 제주)가 시작됐다. 일단 9월을 제외하고 올해 12월까지 매달 계속된다. 제주 기반 인디 레이블 부스뮤직 부세현 대표와 음악평론가 박은석씨, 붕가붕가 레코드의 고건혁 대표 등 제주 출신 3인방이 모여 만든 ‘제주바람’이 신선한 여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제주 곳곳에서 진행된 ‘겟 인 제주, 두번째 위대한 탈출’에 동행했다.
오름에 오르며
즐기는 밴드 공연
자연과 음악이 하나되네 겟 오르멍들으멍 15일 오후 2시 제주에 도착한 참가자 26명의 표정은 딱 연인을 만나기 직전의 모습과 같다. 4시, 연인을 만났다. ‘오르멍들으멍’(오르면서 들으면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옆 ‘곳간, 쉼’에서 4명의 게이트플라워즈 멤버를 만났다. 겨울엔 귤 창고로 쓰는 이곳에 옹기종기 모인 뮤지션과 관객 사이의 거리는 1m. 게다가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은 미뤄두고 어쿠스틱 공연을 선보였다. 첫 만남에 쑥스러워 보였지만, 이내 ‘떼창’은 시작됐다. 2달 만에 내리는 비로, 오름 위에서의 공연은 실내 공연으로 바뀌었지만 천장이 높은 창고는 훌륭한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뮤지션도 색다른 공연 기회가 반갑다. 게이트플라워즈의 기타리스트 염승식씨의 얼굴은 40여분의 공연 뒤 더 상기됐다. 그는 말했다. “제주인 만큼, 그리고 앰프도 쓰지 않고 공연을 하니 여행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쿠스틱 공연을 할 기회도 거의 없는데, 이런 형식을 도입했다는 것 자체로 손대지 않은 자연에 한발 다가선 것 같다.” 오르고 들어야 하는 게 본래 순서이지만, 비 때문에 듣고 난 뒤 올랐다. 외계 행성 같은 느낌을 주는 동쪽 오름 지대 가운데 ‘용눈이 오름’에 참가자와 게이트플라워즈 멤버들이 올라섰다. “오름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삶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뜻이 가장 맞는 것 같아요. 360여개의 제주 오름은 말과 소를 키우는 공동체의 공간이죠.” 찬란한 광경에 첫날 생태 해설을 맡은 제주생태여행 고제량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은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용눈이 오름의 꼭대기에 오르자, 가장 바람이 센 곳을 골라 여행 참가자들은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여행자 이지연씨는 “원래 정말 좋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지금이 딱 그런데요”라며 미소짓는다.
본 공연 뒤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뒤풀이
팬에서 친구로 특별한 경험 겟 에코노마드 겟 인 제주는 생태여행을 지향한다. 제주 자연의 본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탄소배출 제로 여행까지는 아니지만, 길가의 식물과 자연 경관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행한다. 여행 둘쨋날 시작된 에코노마드의 이번 행선지는 우도였다. 다른 여행객들로 길이 북적댄다. 주변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겟 인 제주 여행자들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남서쪽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가, 밭 한가운데를 걷더니 “이 길이 아니네”라며 돌아선다. 잘못 들어선 길이었지만, 오히려 길 잃은 느낌이 새롭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며 15분가량 산길을 걸었다. 제주 지역 산악회가 나무에 달아놓은 길잡이 표시가 없었더라면, 길을 제대로 잃을 수 있는 산길. 우거진 나무는 동굴처럼 그늘을 만들었고, 흙으로 된 오솔길 위엔 오랜만에 대재앙을 맞은 개미들이 피난 가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와중 “철퍼덕”. 아들과 함께 참가한 부소영씨가 넘어졌다. “개미 피하느라…. 괜찮아요!”라며 웃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원시적인 제주의 얼굴을 보면 생태적인 감수성은 샘솟기 마련이다. 우도의 산호사해변에선 다들 해양 생태학자라도 된 듯 바닷물 속 바위를 들춰 보고, 투명한 물속에서 노니는 생명체를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다. “홍조단괴(홍조류 칼슘 침전물, 예전에는 산호로 알려졌었다) 해변도 해안도로의 영향으로 유실되고 있어요. 5년 뒤면 아마 해변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지 몰라요.” 생태해설사 강성일씨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들은 더욱 말없이 모래에 몸을 최대한 맡긴 채 조용히, 조심스럽게 즐겼다. 게이트플라워즈의 1집 음반을 프로듀싱한 신대철의 열렬한 팬으로, 유일하게 부산에서 온 한주희씨는 “에코노마드는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뿌듯한 느낌이다. 새로운 분야와 생태 이런 것들이 결합된 여행을 쉽게 하기는 어려웠는데, 더 넓은 세상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겟 라이브 16일 저녁 7시, 850석 규모의 한라대 한라아트홀은 크라잉넛, 게이트플라워즈, 브로큰발렌타인이 출연하는 ‘겟 라이브’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5월에 연 첫번째 공연보다 좌석수가 2배가 됐지만, 표는 거의 다 팔렸다. <톱밴드1> 출연으로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브로큰발렌타인과 게이트플라워즈가 차례로 열광적인 공연을 펼쳤다. 브로큰발렌타인이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좌석제 공연은 스탠딩 공연으로 바뀌어버렸고 게이트플라워즈와 크라잉넛의 등장은 불붙은 공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탄탄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주라는 색다른 공간이 주는 에너지는 참여한 음악가들과 관객들의 흥분지수를 최대한으로 높여놨다.
겟 인 제주 참가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특별한 혜택은 공연에 참가한 음악가들과 함께 뒤풀이를 한다는 것이다. 꼭 열성 팬이 아니어도 공연 뒤 흥분과 땀냄새, 제주 바람에 실려온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우리는 하나’를 절로 외치게 된다.
다음날 보리빵 만들기 체험과 낙천리 아홉굿마을 걷기, 뮤지션과 참가자들의 대화 시간인 ‘겟 위켄드’ 프로그램은 느지막이 오전 11시 시작됐다. 늦잠을 예약해 둔 참가자와 뮤지션은 결국 동이 터올 때까지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뒤풀이를 즐겼다. 열광적인 공연의 에너지와 잔잔하게 다가오는 자연의 여유가 조화를 이룬 위대한 탈출은, 도시살이의 삭막함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의 힘’을 가졌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제공 곽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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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 오름 위 여행자들.
즐기는 밴드 공연
자연과 음악이 하나되네 겟 오르멍들으멍 15일 오후 2시 제주에 도착한 참가자 26명의 표정은 딱 연인을 만나기 직전의 모습과 같다. 4시, 연인을 만났다. ‘오르멍들으멍’(오르면서 들으면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옆 ‘곳간, 쉼’에서 4명의 게이트플라워즈 멤버를 만났다. 겨울엔 귤 창고로 쓰는 이곳에 옹기종기 모인 뮤지션과 관객 사이의 거리는 1m. 게다가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은 미뤄두고 어쿠스틱 공연을 선보였다. 첫 만남에 쑥스러워 보였지만, 이내 ‘떼창’은 시작됐다. 2달 만에 내리는 비로, 오름 위에서의 공연은 실내 공연으로 바뀌었지만 천장이 높은 창고는 훌륭한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뮤지션도 색다른 공연 기회가 반갑다. 게이트플라워즈의 기타리스트 염승식씨의 얼굴은 40여분의 공연 뒤 더 상기됐다. 그는 말했다. “제주인 만큼, 그리고 앰프도 쓰지 않고 공연을 하니 여행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쿠스틱 공연을 할 기회도 거의 없는데, 이런 형식을 도입했다는 것 자체로 손대지 않은 자연에 한발 다가선 것 같다.” 오르고 들어야 하는 게 본래 순서이지만, 비 때문에 듣고 난 뒤 올랐다. 외계 행성 같은 느낌을 주는 동쪽 오름 지대 가운데 ‘용눈이 오름’에 참가자와 게이트플라워즈 멤버들이 올라섰다. “오름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삶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뜻이 가장 맞는 것 같아요. 360여개의 제주 오름은 말과 소를 키우는 공동체의 공간이죠.” 찬란한 광경에 첫날 생태 해설을 맡은 제주생태여행 고제량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은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용눈이 오름의 꼭대기에 오르자, 가장 바람이 센 곳을 골라 여행 참가자들은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다. 여행자 이지연씨는 “원래 정말 좋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지금이 딱 그런데요”라며 미소짓는다.
브로큰발렌타인이 등장한 ‘GET 라이브’.
함께하는 뒤풀이
팬에서 친구로 특별한 경험 겟 에코노마드 겟 인 제주는 생태여행을 지향한다. 제주 자연의 본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탄소배출 제로 여행까지는 아니지만, 길가의 식물과 자연 경관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행한다. 여행 둘쨋날 시작된 에코노마드의 이번 행선지는 우도였다. 다른 여행객들로 길이 북적댄다. 주변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겟 인 제주 여행자들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남서쪽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가, 밭 한가운데를 걷더니 “이 길이 아니네”라며 돌아선다. 잘못 들어선 길이었지만, 오히려 길 잃은 느낌이 새롭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며 15분가량 산길을 걸었다. 제주 지역 산악회가 나무에 달아놓은 길잡이 표시가 없었더라면, 길을 제대로 잃을 수 있는 산길. 우거진 나무는 동굴처럼 그늘을 만들었고, 흙으로 된 오솔길 위엔 오랜만에 대재앙을 맞은 개미들이 피난 가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와중 “철퍼덕”. 아들과 함께 참가한 부소영씨가 넘어졌다. “개미 피하느라…. 괜찮아요!”라며 웃는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원시적인 제주의 얼굴을 보면 생태적인 감수성은 샘솟기 마련이다. 우도의 산호사해변에선 다들 해양 생태학자라도 된 듯 바닷물 속 바위를 들춰 보고, 투명한 물속에서 노니는 생명체를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다. “홍조단괴(홍조류 칼슘 침전물, 예전에는 산호로 알려졌었다) 해변도 해안도로의 영향으로 유실되고 있어요. 5년 뒤면 아마 해변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지 몰라요.” 생태해설사 강성일씨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들은 더욱 말없이 모래에 몸을 최대한 맡긴 채 조용히, 조심스럽게 즐겼다. 게이트플라워즈의 1집 음반을 프로듀싱한 신대철의 열렬한 팬으로, 유일하게 부산에서 온 한주희씨는 “에코노마드는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뿌듯한 느낌이다. 새로운 분야와 생태 이런 것들이 결합된 여행을 쉽게 하기는 어려웠는데, 더 넓은 세상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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