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저희 집 작은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차양을 걷어야 합니다. 멋스럽게 보이기 위해 걸어둔 장식용 차양이 아니라 마치 행거처럼 문틀에 쭉 걸어놓은 옷들입니다. 세탁한 옷을 다림질하기 위해, 또는 입었던 옷을 옷장에 다시 넣기 찜찜해 걸어놓은 옷들이 늘어나다 보니 차양이 된 형국입니다.
차양을 걷고 들어가면 비밀로 가득 차 보이는 정글이 나타납니다. 화장대 위에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과 이리저리 꼬인 케이블들, 책상 밑에 쌓아둔 오래된 장난감들, 서랍장 위에 쌓인, 서랍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아직 대기중인 옷가지들. 한숨 나옵니다. 아이는 어느 구석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 방이 테마파크라도 되는 양 열광합니다.
딴에는 정리를 해도 해도 너저분한 집 때문에 고민입니다. 남들은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닌다는데 정리 노하우, 수납 기술 등의 수업이 저에게는 절박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 모든 무질서의 바닥에는 어떤 미련 같은 게 있습니다. 3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이지만 언젠가 다시 살을 빼서 입을 날이 올 것이다, 5년 동안 들쳐보지 않은 서류지만 언젠가는 찾아보는 일이 생길 것이다, 10년 동안 겉장도 넘기지 않은 책이지만 언젠가는 읽을 것이다. 몇달에 한번씩 대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도 정리한 티가 나지 않는 이유는 망설이고 주저하다 다시 서랍 속으로, 책상 위로 돌려보내는 저의 미련 때문입니다.
버리기의 기술을 알려주는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책을 보면 잡동사니를 청소하는 것만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인생이 바뀐다는 건 어찌 해볼 가능성이 희박한 미련의 끈을 끊어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요, 이 가을 미련을 버립시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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