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프단다. 아프니까 치유를 하자고 한다. 너도나도 치유를 외친다. 치유를 뜻하는 ‘힐링’은 어디다가 붙여놔도 요즘엔 이야기가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힐링 여행, 힐링 카페, 힐링 마케팅 등등. 패션계 또한 마찬가지다.
‘힐링 패션’이라는 정체 모를 용어가 등장했다. 힐링 패션이 ‘대세’라고 주장하는 브랜드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힐링 패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 여기에 자연주의 감성이 더해진 패션 경향을 힐링 패션이라고 일컫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힐링 패션의 예를 보면 기존의 캐주얼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정체가 모호한 힐링 패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새로운 마케팅에 목마른 의류업체와 의류업계 종사자들이다. 심지어 얼마 전 제주에서는 힐링 패션쇼가 열렸다. 그것도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전세계 환경장관이 모여 얼마나 친환경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들을 맞이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제주 갈옷 힐링 패션쇼’가 펼쳐졌던 것이다. 제주 전통 의복인 갈옷을 폄하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이 힐링 패션쇼에서는 꽃, 바다 등에서 영감을 얻은 감물 염색 소재 드레스 등을 선보였다 하니, 제주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옷으로 표현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여기에 힐링을 보태야 했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마음과 몸에 상처를 입은 이유가 다르듯이 그 치유 방법도 다를 테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서 저마다 ‘힐링’을 외친다. 힐링의 방법과 내용은 또 지겹도록 비슷하다. 자연과 가까이하고, 여유를 찾을 것.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힐링 패션의 도래를 외치는 업체들은 저마다 ‘자연주의의 편안함’을 힐링 패션이라 정의하고 진열대에 언젠가 본 듯한 옷을 선보인다. 자잘한 꽃무늬를 새겨 넣은 옷, 헐렁한 일바지 모양과 비슷한 바지 등. 힐링 패션에 앞서 나온,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을 받을 패션 스타일인 ‘레트로’나 ‘빈티지’ 패션 아이템과 다르지 않다. 결국 내용은 바뀐 것 없이 포장만 바뀐 셈이다.
힐링에 앞서 국내에 넘쳐났던 용어가 있다. ‘웰빙’(참살이)이다. 웰빙은 지금의 힐링만큼이나 모든 영역에 걸쳐 시대의 열쇳말로 여겨졌다. 웰빙에서 힐링 시대로의 진입은 그만큼 더욱 살기 고통스러워진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발버둥치는 개인을 반영한다. 웰빙을 그렇게 주장하고, 웰빙과 관련된 상품은 넘쳐났지만 ‘잘 살아가기’란 결국 그런 것들로 완성되지 않는 것이었다.
웰빙 시대보다 더욱 팍팍해진 삶 속에서 힐링 역시 온갖 ‘상품’들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웰빙 시대에서 보아왔듯, 힐링 또한 그 ‘상품’들을 통해 도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물며 ‘힐링 패션’은 답이 아니란 생각이다. 이 시대 수많은 개인이 지닌 아린 상처는 ‘말장난’이 아닌데, ‘힐링 ○○’이라는 말장난에 가까운 마케팅을 펼친다. 그 얄팍한 속내를 ‘상술’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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