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워크숍에서 책박스를 만들고 있는 참가자들.
[매거진 esc] 스타일
10살 무렵의 놀이. 종이 위에 널찍한 네모를 그려놓고 상상했다. 창문과 밖으로 안으로 열리는 문의 위치를 그려 놓고, 가구의 위치를 네모 안에 채워갔다.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기뻤다. 다시 그로부터 10년, 나만의 공간은 있지만, 도시 이민자 삶의 공간에서 취향은 자리잡기 어려웠다. 언젠가는 떠날 공간이기에, 그 안에 채워질 것들은 언제나 가볍거나 작은 것이어야 했다. 가볍고 작은 가구들 사이에는 언제, 왜 샀는지 모르는 물건들이 떠다닌다.
소유에서 공유로소비에서 생산으로
가구 업사이클링 공방
문화로놀이짱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조지 버나드 쇼가 스스로 남긴 묘비의 문구가 스쳐간다. ‘언젠가는 나만의 취향이 담긴 그런 집에 살겠어’라는 말을 백번 외쳐봐도, ‘나만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런 집’을 꾸미기 위한 노동을 미룬 채 꿈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언젠가’라는 말 속에는 가능성이 담겨 있지만, 결국 그 가능성을 미루는 삶을 포장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를 되뇌기에 지친 당신이라면, 문을 두드려봐야 할 곳이 있다. 공공 창고와 공방을 운영하고, 재활용 목재를 이용한 가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이다. “소유에서 공유로, 소비에서 생산으로, 돈에서 삶으로 가치는 옮아갈 것”이라고 믿으며 천천히 묵묵하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문화로놀이짱의 안연정 대표를 만났다.
처음 찾는 사람은 애를 먹는다. 주차장과 공사장이 뒤섞여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공간을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컨테이너 사이 앞마당에 들어서야 안심이 된다. 큰 유리창 안에는 가구와 도구들이 놓여 있다. 창고에는 제법 많은 재활용 목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쌓인 목재들은 가구로 새 생명을 얻는다. 재활용 가구, 이른바 업사이클 가구에 대한 관심이 요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기성 가구 브랜드에서도 업사이클 가구 라인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로놀이짱은 그런 기업처럼 될 관심은 없다. 집중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 “개인의 취향과 미감을 일깨우고, 그것을 반영한 공간을 꾸리고, 꾸미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에요. 이처럼 개인이 스스로의 건강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문화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라고 안연정 대표는 소개한다. 이처럼 문화로놀이짱의 존재 목적은 욕망으로 굴러가는 소비의 굴레를 끊고자 하는 데 있다. ‘재활용 가구’는 소비에 위축되지 않는 삶,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삶을 위한 수단이다.
안 대표가 말한 문화적 여건 가운데 하나는 ‘공유’를 바탕으로 한 희한한 도서관이다.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재료, 매뉴얼을 갖춰 놓았다. 도서관의 책처럼 문화로놀이짱이 갖춘 것들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로 여기고 빌려쓸 수 있도록 도구 도서관, 재료 도서관, 매뉴얼 도서관을 만든 것이다. 매뉴얼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때로 그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아카데미와 워크숍이 이뤄진다. 문화로놀이짱은 이들 도서관을 ‘명랑에너지발전소’라는 이름 아래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면, 돈을 안 썼다는 기쁨보다 뭔가 몰입해서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더 크죠. 작지만 자신의 능력,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하고요”라고 안 대표는 말했다. 하지만 정작 ‘공방’이라는 말에 겁이 난다. 연필을 귀 옆에 꽂고, 잔뜩 찡그린 채 묵묵히 톱질과 대패질을 수련한 뒤에야 맛볼 수 있는 만족감이 아닐까? “일반 공방과는 과정이 좀 달라요. 생활가구를 만드는 데 알파벳부터 꼼꼼하게 배울 필요 있나요. 저도 배워봤지만, 금세 질리던걸요. 초보자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이 말에 걱정을 좀 덜었다.
인테리어 방법이 아닌
나만의 취향과 방식
개발하는 워크숍도 인기 가구 만들기 워크숍도 있지만, 우리가 몸담은 일상과 공간을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강연에 마음을 금세 빼앗기게 된다. ‘나를 닮은 진짜 공간 만들기’라는 강연이 1월 한 달 동안 열린다. 안연정 대표는 말했다. “금세 마감이 됐어요. 어쩌면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바랐는지 몰라요. 공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조건, 구조 내의 공간에 머무르죠. 이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돌아보는 기회가 될 거예요.” 인테리어 강좌는 아니다. 우선, 그 시작이 인테리어 소품을 사서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일단 ‘비운다’. “일상 공간에서 불필요하지만 욕망으로 소비한 것”들과의 대면도 이뤄진다.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본래, 재활용 가구는 개인 주문을 받아 제작했다. 올해 늦봄 무렵에는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 쓸 수 있는 모듈화한 가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같은 시기 좁은 집과 잦은 이사, 셋집이라는 조건에 맞는 가구 시스템도 선보일 예정이다. 조립 가구와 가구 시스템 모두 디자인은 완성되었고, 본보기 제품을 만드는 중이다. 재활용 가구의 장점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안연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버려진 것이지만 원목을 쓰니 합성 목재보다 훨씬 재료가 건강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서적인 건강함도 키워지는 것 같아요. 버려진 나무지만 연민이 생기죠. 소각장에서 버려진 아이(나무)들을 되살렸다는 것만으로 얻는 에너지가 있다니까요.” 유기견, 유기묘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겹친다. 생명은 없지만, 이야기가 있는 재활용 가구에게 ‘반려 가구’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법하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제공 문화로놀이짱
가구 업사이클링 공방
문화로놀이짱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조지 버나드 쇼가 스스로 남긴 묘비의 문구가 스쳐간다. ‘언젠가는 나만의 취향이 담긴 그런 집에 살겠어’라는 말을 백번 외쳐봐도, ‘나만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런 집’을 꾸미기 위한 노동을 미룬 채 꿈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언젠가’라는 말 속에는 가능성이 담겨 있지만, 결국 그 가능성을 미루는 삶을 포장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를 되뇌기에 지친 당신이라면, 문을 두드려봐야 할 곳이 있다. 공공 창고와 공방을 운영하고, 재활용 목재를 이용한 가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이다. “소유에서 공유로, 소비에서 생산으로, 돈에서 삶으로 가치는 옮아갈 것”이라고 믿으며 천천히 묵묵하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문화로놀이짱의 안연정 대표를 만났다.
재활용 목재로 만든 책박스와 스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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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취향과 방식
개발하는 워크숍도 인기 가구 만들기 워크숍도 있지만, 우리가 몸담은 일상과 공간을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강연에 마음을 금세 빼앗기게 된다. ‘나를 닮은 진짜 공간 만들기’라는 강연이 1월 한 달 동안 열린다. 안연정 대표는 말했다. “금세 마감이 됐어요. 어쩌면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바랐는지 몰라요. 공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조건, 구조 내의 공간에 머무르죠. 이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돌아보는 기회가 될 거예요.” 인테리어 강좌는 아니다. 우선, 그 시작이 인테리어 소품을 사서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일단 ‘비운다’. “일상 공간에서 불필요하지만 욕망으로 소비한 것”들과의 대면도 이뤄진다.
문화로놀이짱에서 운영하는 명랑에너지발전소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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