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며칠 전 가로수길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고급 외제차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였지만 묘하게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로수길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면 늘 가는 샌드위치집에서 샐러드와 빵조각을 입에 쑤셔 넣으며 친구와 투덜거렸지요. “진짜 가로수길도 이제 갔어.”
가로수길은 이제 명동이나 강남역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입니다. 대기업 의류와 화장품 브랜드숍, 그리고 커피전문점이 장악해 버렸으니까요. 칼럼을 쓰면서 2008년 6월에 썼던 가로수길 소개 기사를 보니 구문도 이런 구문이 없군요. 하루만 지나도 구문이 되는 게 신문의 운명이기는 하지만 떼돈을 벌기보다 내 식대로 운영하는 가게가 많다는 기사를 직접 쓴 제 손가락이 민망합니다. 지금은 가로수길이야말로 떼돈을 벌고자 하는 규격화된 프랜차이즈 매장들만 즐비해진 거리의 대표 격이니까요. 추천했던 가볼 만한 곳도 10곳 중 2곳만 아직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새롭게 활기를 띠는 길들을 소개하는 건 즐거운 작업입니다. 꼼데가르송길이라는 이름으로 떴던 이태원 한강진역 주변의 골목들에 요즘 재밌고 예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답니다. 이태원 중심거리에는 없던 문화적인 공간들도 눈에 띕니다. 물론 여기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리움미술관 주변 땅을 특정 기업에서 사버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급 의류브랜드 대형매장도 얼마 전 새로 들어섰습니다. 이태원 중심가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산책의 즐거움도 조금씩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여기저기 기웃거릴 만합니다. 요리면에 실린 지도를 오려서 한번 들러보시길. 게으름 피우다가는 가로수길처럼 금방 그 재미가 사라질 수 있으니 빨리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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