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쇼핑 관련 블로그의 파도를 타다 보면 요즘 부쩍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브랜드 패밀리세일 때 겟한 아이템이에요’ ‘미국 ○○백화점에서 운좋게 겟한 아이랍니다’. 겟. 원래 철자는 get. ‘얻다’, ‘구하다’, ‘마련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지요. 몇년 전 ‘웨어러블(wearable)하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쏟아져나오는 걸 보면서 손발이 오글거렸던 적이 있는데 ‘겟하다’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더 낯간지럽습니다.
웨어러블이라는 단어가 ‘난 이런 단어도 안다’는 얄팍한 자랑처럼 느껴진다면 ‘겟하다’에는 ‘나는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익숙해서 말이야’라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허세가 배어나옵니다. 남용이 옛날에는 패션잡지 등에 국한된 어법이었지만 이제는 육아나 일상 블로그에서도 넘쳐납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보그병신체’라는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단어를 만들어냈겠지요.
이제 세계 어디를 가봐도 서울이 국제도시로서 밀릴 게 하나도 없다는 확인을 하는데, 영어에 대한 열등감과 선망만은 70~80년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패션 분야에서의 영어 남발이 그 선망의 우스꽝스러운 발현이라면, 날이 갈수록 번창하는 영어유치원의 인기는 뿌리 깊은 열등감의 체계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말하는 영어유치원 보내기의 보람은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입니다. 기왕이면 매끄러운 발음이 듣기는 좋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데 발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석학 가운데 인도나 일본 같은 아시아 출신 교수들의 형편없는 발음이 그의 명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어 열등감, 이제는 좀 잦아들 때도 되지 않았나요?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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