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언젠가 ‘짝사랑’에 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 입었던 꽃무늬 원피스만큼이나 아스라한 단어 짝사랑에 대해서 곱씹다 보니 떠오른 게 있습니다. 짝사랑 따위는 내 사전의 단어가 아니라고 기고만장하던 20대 초반 저에게도 짝사랑은 있었습니다.
바로 샬랄라한 스타일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일단 색상은 분홍색, 여기에 여성스러운 레이스나 자수가 수놓아진 디자인, 그리고 꽃무늬에 대한 열망이었죠. ‘나 여자야’라고 절규하는 듯한 색과 레이스, 꽃무늬가 넘쳐나는 옷들로 가득한 이대 앞 옷가게를 지나면 저절로 발길이 멈췄습니다. 물론 들어가서 이옷 저옷을 입어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앳된 20대였음에도 그런 옷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덩치가 아담하지도 않고 피부가 하얗지도 않고 만화주인공처럼 눈망울이 크지도 않은 제가 꽃무늬 원피스에 레이스 카디건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판매의지로 활활 불타는 옷가게 주인마저 의욕을 상실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주인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질 지경이었지요.
나이가 들면서 꽃무늬는 점점 더 제 인생에서 멀어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짝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옷가게를 지나다가 귀여운 꽃무늬가 프린트된 티셔츠가 잔뜩 쌓여 있는 걸 봤습니다. 참을 수가 없어 매장에 들어가 입어보고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어때?” 그윽한 눈길로 저를 쳐다보던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음, 속옷 입은 거 같아.” 짝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정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에잇! 꽃무늬 유행 따위 얼른 사라져 버려라.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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