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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한낮의 클럽같은 ‘19금’ 물놀이

등록 2013-08-07 19:03수정 2013-08-08 16:02

1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중간층에 자리잡은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1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중간층에 자리잡은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esc] 라이프
장안의 청춘남녀들이 바글바글…호텔 야외 수영장 참관기
음악과 술, 물과 태양이 있다
잔소리하는 어른은 없다
뭐든 해도 된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곳은 말 그대로 ‘19금’이다
어린이들은 입장할 수 없다

“아까부터 저 여자가 나 보고 웃어. 반했나 봐.” 애인에게 말했다. “오빠가 계속 쳐다보니까 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여자도 남자처럼 얼굴만 밝혀서 이 미남 청년을 힐끔힐끔 쳐다봤다는 게 아니라, 배와 가슴에 힘을 주느라 표정이 굳어버린 근육질 남자가 많은데 그중 배가 나온 내가 의외로 귀여워 보여서 쳐다본 게 아닐까, 라거나… 내가 갓 상경한 농촌 총각 같아서 신기한가 봐, 라는 뜻이었다.

여름이면 도심의 호텔 야외수영장은 물 좋은 클럽으로 변한다. 굳이 물에 뛰어들지 않아도 즐거운 수영장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서울 이태원의 해밀턴호텔 수영장을 찾았다. 애인은 5년째 여름마다 이 호텔 수영장에 오고 있다고 했다. 몰랐다. 만난 지 일 년이 안 돼서. 이 수영장에 가자고 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오빠 거기 가면 기죽을걸?” 설마 내가? 며칠째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비가 떨어지는데 일기예보를 보며 팔굽혀펴기를 했다. 드디어 비가 안 왔다. 금요일 오후였다. “어떨 땐 금요일에도 줄을 선다니까.”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줄을 선다고 애인이 말했다. 왜? 수영장에 금이라도 퍼다 놨나. 금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 무척 많이. 5층 중간 옥상에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애인에게 말했다. “너는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데 다녔어?” 나만 기죽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허리가 뒤로 활짝 젖혀진 선베드에 누워 애인이 가져온 패션잡지를 펼쳐놓고 눈을 움직였다. 내가 움직였다기보다는 눈이 스스로 움직였다. 낮인데 사람이 많았다. 특히 여자가 많았다. 예쁜 여자들은 다 여기 오는구나, 생각했다. 물론 안 예쁜 여자도 많았다. 그때 한 남자가 놀랍고 민망하게 몸에 붙는 삼각 수영팬츠를 입고 내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엉덩이가 다 보였다. 티(T)팬티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누워서 셀카를 찍던 여자친구가 말했다. “이태원이잖아. 팬티 예쁘네.” 난 차마 다시 못 쳐다봤지만, 뭐, 어울리긴 했다. 맞다. 남자는 티팬티 입지 말란 법 있나? 어울리면 그만이지. 호텔 수영장에서는 모든 일이 아무렇지 않다.

2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2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풀 속엔 까불거리는 남자애들 네댓이 물 위에 띄워둔 커다란 튜브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여자들은 선베드에 누워 금요일의 태양과 맞짱을 떴다. 그곳까지 와서 독서를 하는 여자도 있었다. “요즘 누가 수영장에 수영하러 와. 새벽반 실내수영장도 아니고.” 몸에 오일을 바르며 애인이 말했다. 글래머러스한 여자 둘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찍었다. 비키니 위로 드러난 가슴에 꽃 문신이 보였다. 만지고 싶었다고 적으면 변태 같겠지만, 뭐, 사실이니까. “쟤들은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여기 온 거 같아.” 내가 말했다. “그게 왜? 문제 있어?” 애인이 말했다.

수영장 안엔 디제이 부스와 먹을 것을 파는 데도 있었다. 애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예쁘고 길고 큰 여자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그 여자들을 쳐다보는 별로 안 잘생긴 남자가 세 명 있었다. 음, 여기도 나를 기죽게 할 정도의 남자는 없군, 생각하는데 한 여자가 맥주를 벌컥 들이켜더니 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같이 있던 여자들이 웃으면서 달려왔다. 몸의 살이 흔들려서 마치 살이 웃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디제이가 (디제이까지 여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말했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일렉트로닉 위주였는데 선곡이 괜찮았다. 기준은, 내가 계속 기분이 좋았다는 것.

“사진 찍는 여자 좀 그만 쳐다봐. 쟤들 민망하겠다.” 애인이 말했다. ‘그럼 내가 몸에 쓸데없이 근육 붙인 남자들을 쳐다봐야 해?’ 속으로만 말했다. 비치타월만 한 장 깔고 누워 있는 여자도 있었다. 굳이 선베드를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햄버거와 맥주 말고 닭요리, 소시지, 음료도 팔았다. 애인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붉어진 얼굴이 가라앉지 않아서 아이스티를 마셨다. 그런데도 취기가 도는 것 같았다. 클럽에 온 것처럼. 낮에….

3 8월15일까지 나이트 풀을 여는 서울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3 8월15일까지 나이트 풀을 여는 서울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야외수영장. 사진 각 호텔 제공
음악과 술과 물과 태양이 있다. 잔소리하는 어른은 없다. 해밀턴호텔 수영장은 뭐든 해도 된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남미의 해변에 온 것처럼. 그리고 이곳은 말 그대로 ‘19금’이다. 어린이들은 입장할 수 없다.

이 호텔은 밖에서 보면 색이 촌스러운 건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에 보물 장소를 품고 있다. 수영장에 있는 4시간 동안 계속 남자들이랑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도 대부분 여자들끼리 오니까. 그리고 수영장이 별로 크지 않아서 뭐랄까, 한두 시간 있으면 친숙한 느낌이 드는 여자들이 생긴다. 그녀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아마. 애인은 저기 어디에 잘생긴 남자가 있고, 또 이쪽 어디에도 잘생긴 남자가 있다는데 도대체 뭘 본 거지? 내가 볼 땐 백인 청년 두 명이 비교적 미남이었는데 가슴에 수염이 너무 많았다.

서울에 ‘물 좋은’ 호텔 야외수영장이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수영장은 역사가 깊다. 80~90년대 최고의 야외수영장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이름이 ‘맘모스’였고 지금은 리버파크다.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아 ‘맘모스 수영장’을 팝아트 콘셉트로 재현했다. 넓다는 것이 장점이다. 7월6일부터 9월1일까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유수풀도 열어 낮에 가족과 오기에는 이곳이 좋을 것 같다. 밤에 이곳에 가면 실오라기만 걸치고 사교 모임을 갖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수영장은 강남 유일의 야외수영장이다. 원형 풀, 야자수와 그리스 신전을 본떠 만든 기둥이 인상적이다. 정원에 있는 느낌이 난달까. 8월15일까지 나이트 풀을 개장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역사는 밤에 이뤄지니까. 남자끼리 가자. 여자끼리 오라.

이우성(시인·<아레나 옴므 플러스> 기자)

서울시내 주요 호텔 야외수영장 정보

해밀턴 호텔

개장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평일 1만7000원 주말 2만원

이벤트: 주말 낮 1시 ‘d 아이스 클럽 파티’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개장 시간: 주간 아침 8시30분~오후 5시30분

야간 오후 7~11시(야간 개장 8월15일까지)

입장료: 주간 어른 6만5000원 어린이 3만3000원

야간 어른 3만9000원 어린이 1만9000원

이벤트: ‘서머 바캉스 패키지’ 야외수영장 50% 할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개장 시간: 주간 오전 10시~오후 6시

야간 오후 4~10시(야간 개장 8월18일까지)

입장료: 주중 어른 10만원 어린이 6만원

주말 어른 12만원 어린이 8만원

(풀사이드 뷔페 포함, 8월18일까지 성수기 한시 요금)

이벤트: 야간 운영 기간 중 매주 금·토요일 스페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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