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스타일
백화점과 마트표 틈새 비집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 개발한 어린이 옷 디자이너 3인 인터뷰
백화점과 마트표 틈새 비집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 개발한 어린이 옷 디자이너 3인 인터뷰
‘패션 디자이너’라고 하면 흔히 ‘어른 옷’ 디자이너를 떠올린다. 어린이 옷은 그냥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몇 안 되는 브랜드 중에 골라 사는 패턴에만 익숙한 이들이 많다. 좀더 적극적인 이들은 남대문시장에서 발품을 팔거나 해외 유명 브랜드 직구(직접 구매)에 도전하지만 그래도 선택지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쇼핑몰, 길거리나 백화점 편집숍 등으로 눈을 돌려보면 거기엔 신세계가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아동복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명 브랜드가 선점한 아동복 시장에서 자기만의 브랜드를 새로 일궈가는 디자이너들. “아동복은 원래 이렇다”는 공식에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펼쳐가는 이들을 만났다.
■ 상남자 냄새-박경운 ‘라이크 어 스크리블’ 대표
세살 아이가 유성매직을 휘갈겨 소파에 커다란 낙서를 했다. 아빠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브랜드 이름으로 쓸 만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낙서가 좋다는 뜻의 아동복 브랜드 ‘라이크 어 스크리블’(Like a scribble) 탄생 배경이다. 브랜드 이름은 귀엽지만 옷에서는 ‘남자 냄새’가 물씬 난다. 아기자기한 프린트도, 알록달록 채도 높은 색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막 문을 연 이 브랜드는 남성 작업복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아동복을 만들고 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박경운(33)씨는 졸업 뒤 8년 동안 여성복을 만들었다. 이후 다른 디자이너들과 남성복 브랜드를 새로 만들면서 주로 ‘작업복’(workwear) 스타일의 디자인을 구상했다. “아들에게 이런 옷을 만들어 입혀보면 어떨까.” 세살짜리 아들을 보며 아들을 위한 ‘남성 아동복’의 꿈을 키웠다. 6개월 넘게 디자인에 전념해 이번 가을·겨울 시즌을 겨냥한 제품들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아동복에는 대부분 귀엽게 프린트된 옷들이나 아기자기한 옷들만 있는 게 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어른이 입기에도 멋진 스타일의 옷을 아이에게 입히고 싶었죠. 작업복 스타일이지만 굳이 남자아이용, 여자아이용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박 대표는 아이 옷에 성인복에 쓸 법한 부자재를 과감히 사용했다. 아이 옷이니까 모양만 있는 ‘가짜 주머니’를 다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아예 연필을 꽂을 수 있는 셔츠 주머니, 큰 공구를 넣을 수 있는 자켓 주머니 등을 구현했다. 오리털과 라쿤털을 채워 넣어 따뜻함을 챙기는 ‘아빠 마음’도 잊지 않았다. 자꾸 크는 아이들을 위해 넉넉한 사이즈의 옷을 구입하는 ‘부모 마음’도 헤아려 소매를 걷을 때 안감이 보이지 않도록 속 시접을 최대한 길게 넣는 ‘디테일’도 살렸다.
열심히 만든 옷에 아들을 모델로 세웠다. “이제 막 시작하는 병아리 브랜드로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유통망을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아동복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개성있는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것이 목표다.
■ 보헤미안의 매력-경제은 ‘딤플 모먼트’ 대표
넉넉한 품, 부드러운 옷감, 따스한 색상. 보조개를 지으며 미소 짓는 순간이란 뜻의 ‘딤플 모먼트’(Dimple Moment)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감성을 아이 옷에 구현해냈다. “아가씨 시절부터 아이 옷을 너무 좋아했다”는 경제은(30) 대표는 지난해 5월 이 브랜드를 론칭했다. 자신의 첫번째 브랜드다. 남편을 따라 시작한 외국 생활, 이제는 다섯살이 된 아들을 낳아 키운 시간 등을 지나 ‘오랜 갈망’이 폭발한 셈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에서 패션홍보를 전공한 경 대표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해 일본에 신접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일본에서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오는 남편을 기다리기 지루해” 파자마 등을 파는 쇼핑몰 운영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은 뒤 한국에 돌아왔고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며 “아이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나갔다.
혼자 5개월 동안 시장조사 한 뒤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한 노하우를 살려 온라인 매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냈다. “매장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디자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해줄 공장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에 입점을 하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져갔다. “대다수의 엄마들이 수입제품을 선호하고 해외 직구가 쉬워지는데다 아동복 에스피에이(SPA) 브랜드도 많아져 국내 아동복 시장이 어려워진 게 현실”이라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1년 만에 직원 수는 11명으로 늘었다.
너무 심플하지도, 너무 가벼워 보이지도 않겠다는 의미의 “낫 투 심플, 낫 투 팝”(Not too simple, not too pop)이 슬로건이다. 태슬 같은 장식이나 자수, 아즈텍 패턴 등으로 민속의상풍의 느낌이 나는 옷이 많다. ‘디테일’에 신경을 쓰다 보니 원가가 높아지고 마진이 줄어들지만 “포기할 수 없어” 핸드메이드 요소가 줄어들지를 않는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깔끄러운 원단은 쓰지 않고 아우터까지 물세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등 신경을 써 ‘엄마가 만든 옷’의 테가 난다.
최근 경 대표는 전국을 순회하며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오는 25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동복 박람회인 ‘플레이타임도쿄’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아들이 커나감에 따라 성공한 국내 브랜드가 별로 없는 분야인 ‘10대 옷’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액세서리와 생활용품까지 영역을 넓혀 ‘아이들을 위한 토털 브랜드’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한다.
■ 20년 노하우의 절제미-윤지원 ‘초코엘’ 실장
“20년 전에 아동복 디자인 시작할 때는 백화점 아니면 재래시장, 둘뿐이었어요.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있고 신진 브랜드도 여러 상품을 모아놓는 편집숍을 통해 백화점에도 입점하니 유통 경로가 다양해졌죠.” 윤지원(44) 실장은 대학을 졸업한 24살 때부터 모아방, 베비라, 파코라반 베이비, 꼬망스 등 국내 아동복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해왔다. 그런 그가 2011년 여름, 친구와 의기투합해 아동복 브랜드 ‘초코엘’을 만들었다. ‘초콜릿 엘리펀트’의 줄임말이다.
“절제된 느낌의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동안 ‘아이 옷이니까’ 레이스를 달거나 부모가 싫증나지 않을 만한 디자인을 해내야 했다면 내 브랜드를 통해서는 최대한 미니멀한 매력을 발산하고자 했죠.” ‘작은 데서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아이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부드러운 원단을 쓰고 색상의 톤은 낮췄다. ‘정통 프랑스풍’ 옷을 입히고자 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중간유통망을 없애고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를 하다 보니 가격대를 많이 낮출 수 있었다. 원피스를 5만원, 트렌치코트도 7만~8만원에 팔았다. 한번 구매한 고객들의 재구매가 이어졌다. 백화점에서 입점 요청이 왔지만 아직 고민중이다. 유통 단계가 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리점 개설 문의도 이어진다. 디자인에 전념한 3년, 앞으로의 3년은 사업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아동복을 오래 만들어왔지만 윤 실장은 아이가 없다. 그에게 아동복은 “누우면 등에 배길까봐 뒤쪽에 장식을 달 수 없고 기저귀 차는 아이들에 맞춰 바지를 만들어야 하는 등” 제약이 많아 디자인하기 까다로운 품목이다. 하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환히 웃는 아이의 모습에서 ‘달콤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앞으로 중국, 싱가포르 등 외국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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