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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필드 3종’의 추억은 잊어주세요

등록 2014-10-08 20:39수정 2014-10-09 16:10

지난 2일 ‘앤디앤뎁’의 김석원·윤원정 디자이너와 지에스샵이 함께 만든 브랜드 ‘디온더레이블’의 론칭 1주년 기념 생방송 현장. 지에스샵 제공
지난 2일 ‘앤디앤뎁’의 김석원·윤원정 디자이너와 지에스샵이 함께 만든 브랜드 ‘디온더레이블’의 론칭 1주년 기념 생방송 현장. 지에스샵 제공
[매거진 esc] 스타일
저가 의류의 상징에서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패션 시장 늘려가는 홈쇼핑 채널들
“이제 3분 남았고요, 77사이즈는 매진 예상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디자이너 브랜드 ‘앤디앤뎁’ 좋아했는데요. 앤디앤뎁 혹시 모르시더라도 디자이너 경력을 믿으시고 백화점 2층 중앙에 왜 자리를 잡았을까 생각하시면서 선택하세요. 디자이너가 만들면 소재부터 어깨선 처리까지 다르니까요.”

2일 오전 10시58분37초. 홈쇼핑 채널 ‘지에스샵’의 생방송 촬영이 진행중인 서울 영등포구 지에스 강서타워 1층 스튜디오 안. 방송에 불필요한 소음은 모두 차단한 이곳에 오직 10년 경력의 쇼호스트 서아랑씨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 하지만 쇼호스트의 입보다 더 아우성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진행자 방향으로 놓인 전광판의 ‘주문 현황 숫자’였다. 생방송 33분 만에 2358건을 넘어섰다.

지에스샵에서 손정완 디자이너의 ‘에스제이 와니’ 의상을 판매하는 모습. 지에스샵 제공
지에스샵에서 손정완 디자이너의 ‘에스제이 와니’ 의상을 판매하는 모습. 지에스샵 제공
평일인 목요일 오전의 어정쩡한 시간대. 옷 팔기에 좋은 타이밍은 아니다. “여성복은 차라리 오전 8~9시, 남편이 출근한 직후나 아침 드라마 시간대에 판매하는 것이 좋아요. 10시 넘어서면 주부들도 밖에 나가려고 치장하느라 바쁘거든요.” 강혜련 지에스샵 트렌드의류팀 상품기획자(MD)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은 10시25분부터 35분 동안 옷 5종을 묶어 3천 세트 넘게 판매하며 ‘선방’을 했다.

주문 현황이 집계되는 전광판은 프로듀서와 구매자의 의견이 동시에 올라오는 ‘아고라’이기도 했다. “아직 메인 재핑 안 들어왔으니 한번 정리하고 갈게요.” 지상파 방송사(메인)의 주요 드라마가 끝나고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기(재핑)를 할 시간이 아직 안 됐으니 상품 소개 한번 정리하고 가자는 프로듀서의 지시사항이다. 프로듀서가 “사이즈 문의가 많다”고 입력하면 쇼호스트는 노련하게 “제가 입은 사이즈가 55입니다. 정 사이즈로 주문하시면 돼요”라고 했고, “바지 길이가 짧아 보인다는 분들 있다”고 뜨면 쇼호스트가 눈치 빠르게 “네, 제 키가 170이 넘어서 바지가 좀 짧아 보이죠?”라고 했다.

씨제이오쇼핑이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지난 3월 서울패션위크에서 펼친 패션쇼 무대. 씨제이오쇼핑 제공
씨제이오쇼핑이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지난 3월 서울패션위크에서 펼친 패션쇼 무대. 씨제이오쇼핑 제공
그 아래로는 고객들의 실시간 카톡 메시지가 떴다. “자켓 넘 맘에 들어용.(8145)” “보자마자 구매합니다.(0038)” 갈수록 모바일로 홈쇼핑 상품을 구매하는 비중이 늘어간다. 생방송이 끝날 무렵인 11시에 확인해보니 모바일 주문이 410건, 전화 주문이 2180건이었다. 이에 비해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주문은 70건에 그쳤다. 개통된 지 불과 4년밖에 안 된 모바일 시장의 확장세가 가장 무섭다.

그러고 보니, 옷을 판매하는 홈쇼핑 채널의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쇼호스트는 시종일관 ‘앤디앤뎁’의 부부 디자이너 ‘김석원·윤원정’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날 판매한 재킷, 바지, 치마, 흰색 티블라우스, 검정 반팔티셔츠는 두 디자이너가 지에스샵과 손잡고 만든 세컨드 브랜드 ‘디온더레이블’ 제품들이었다. 재킷과 바지는 김 디자이너의 작품, 블라우스와 티셔츠는 윤 디자이너의 작품이며 ‘디온더레이블’ 론칭 1년을 맞아 13만8000원이란 파격가에 ‘선물삼아’ 준비한 구성이라 했다.

방송 내내 가장 강조된 표현은 ‘디자이너 브랜드, 백화점 매장, 잘 만든 옷, 좋은 소재, 대표 작품, 선물 같은 구성’ 등이었다. 무대 중앙에는 ‘핫 스타일 쇼’라는 간판이 반짝였고 무대 오른쪽에서는 두 명의 여성 모델이 쇼호스트가 판매중인 재킷과 바지, 블라우스, 티셔츠와 치마를 입고 연신 포즈를 취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홈쇼핑에서 옷을 샀다”는 말은 “저렴한 옷을 샀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홈쇼핑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잭필드 3종’ 세트와 같이 저가 상품을 많은 수량으로 묶어 판매하는 특가 쇼핑 채널이라는 인식이 강했죠.”(최혜림 씨제이오쇼핑 홍보팀) “한 4~5년 전까지의 분위기는 홈쇼핑에서 옷 사입으면 부끄럽다는 거였죠. 5년 전, 홈쇼핑의 패션 기획 업무를 처음 맡게 됐을 때도 방송에서 팔다 남았다는 리넨 재킷 하나를 누가 줬는데 집에 가져다가 곧장 옷 수거함에 버렸을 정도로 품질이 안 좋았어요.”(강혜련 지에스샵 트렌드의류팀 상품기획자)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손정완, 앤디앤뎁 등
인기 디자이너와 세컨드 브랜드 개발
싸구려 이미지 탈피
디자이너들에게는
인지도 높이고 수익성 올리는 기회

지난달 씨제이오쇼핑의 ‘오 패션 스튜디오 라이브’에서 송지오 디자이너의 브랜드 ‘지오송지오’의 블라우스를 판매하는 모습. 씨제이오쇼핑 제공
지난달 씨제이오쇼핑의 ‘오 패션 스튜디오 라이브’에서 송지오 디자이너의 브랜드 ‘지오송지오’의 블라우스를 판매하는 모습. 씨제이오쇼핑 제공
그런데 이제 홈쇼핑 채널들은 하나같이 패션을, 스타일을, 디자인을, 소재를 말한다. “이렇게 싼 옷 봤냐”고 묻지 않고 “이 옷 정말 예쁘지 않냐”고 묻는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강조하고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나와 패션 제안을 한다. ‘고급화’ 전략이다. 패션 상품의 고급화를 위해 홈쇼핑 채널들이 손잡은 상대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다.

‘트렌드 리더’를 슬로건으로 한 지에스샵은 2012년 손정완 디자이너와 협업 브랜드 ‘에스제이 와니’(SJ WANI)를 시작으로 앤디앤뎁의 김석원·윤원정, 김서룡, 이승희, 홍혜진, 이석태, 한상혁, 김재환, 이재환, 주효순, 젬마홍, 조성경, 박성철 등 15인의 디자이너와 잇따라 협업 브랜드를 출시했다. ‘에스제이 와니’는 출시 첫 방송에서 전 사이즈 매진을 기록하며 1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디온더레이블’ 역시 지난해 9월 첫 방송에서 4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지난해 지에스샵은 이러한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간장 게장부터 보험까지 판매하는 홈쇼핑 매출액 전체에서 패션 부문은 무려 40%를 차지하게 됐다. 3년 새 10%가 껑충 성장한 수치다.

씨제이오쇼핑은 2009년부터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정윤기씨를 진행자로 영입한 ‘셀럽샵’을 통해 ‘홈쇼핑의 패션 제안’이란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크리스 한, 고태용, 최범석, 이도이 등 젊은 디자이너와의 협력 브랜드를 소개했고 패션 부문의 매출만 연간 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번 가을에는 국내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한국패션디자인연합회’와 손을 잡고 ‘CFDK’란 이름의 브랜드를 통해 계한희, 권문수, 허환 등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홈쇼핑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홈쇼핑 회사들이 디자이너와 협력하는 방식은 대개 ‘디자인 주문’에 가깝다.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받아 홈쇼핑 회사가 정한 제작사에 제작을 맡기는 방식이다. 홈쇼핑 시장이 워낙 커, 옷의 경우 만 장 단위로 생산되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브랜드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디자이너들은 로열티를 받는 형식이다. 지에스샵과 일년 동안 협업한 김석원 디자이너는 “홈쇼핑과의 협력을 통해 디자이너는 보다 널리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고 소비자들은 양질의 디자인 제품을 대량생산 덕분에 낮은 가격으로 구입하니 서로에게 도움”이라며 “홈쇼핑이 디자이너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스파(SPA) 브랜드도 하이엔드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등 의류 시장이 전반적으로 성숙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 패션 시장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강형주 씨제이오쇼핑 패션사업본부 상무는 “텔레비전 홈쇼핑의 패션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단순한 상품 소개를 넘어 고객들에게 편집숍의 상품을 제안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 “역량 있는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홈쇼핑에서의 패션상품 비중을 앞으로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안의 모바일에서까지 끊임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더 이상 고객들에게 ‘이 옷이 좋은 옷 맞다’고 우기면서 팔 순 없다”고 강혜련 엠디는 말했다. 괜찮은 디자이너의 디자인에 좋은 소재가 결합한 옷을 선보여 ‘진짜 고급화’에 나서야 할 때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오늘도 홈쇼핑 회사들은 새로 영입할 디자이너의 명단을 두고 회의를 하고 소재와 디자인, 제작사를 따져가며 새로운 패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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