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정지호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옆집 반려동물과 공존하기
안쓰럽지만 무섭거나 귀엽지만 성가신 존재 길고양이들에 대처하는 자세
안쓰럽지만 무섭거나 귀엽지만 성가신 존재 길고양이들에 대처하는 자세
그 여자는 집에 가는 밤길이 무섭습니다. 남들 다 귀엽다는 고양이들과 골목에서 눈이 마주치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라치면 주변 사람들은 “니가 더 무섭다”며 그 여자를 몰지각한 냉혈한으로 치부합니다. 그냥이는 매일 그 여자를 기다립니다. 아늑한 화장실을 마련해준 그 여자에게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지만 도통 곁을 내주지 않는 그 여자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애묘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서먹한 우리, 쿨하게 공존하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요?
그녀 이야기
밤 10시40분. 야근으로 지친 몸의 근육과 신경줄들이, 집에 다다를수록 다시 팽팽해집니다. 이 자식들, 오늘 또 싸고 갔을까? 저희 집은 서울 사당동 주택가에 있는 다가구 주택의 3층입니다. 아파트나 빌라와 달리, 층층이 연결된 계단과 통로가 모두 실외죠.
이사온 지 두세달쯤 지났을 때였어요. 햇살이 무척 좋은 가을의 토요일 낮이었죠.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통로 한구석에 짙은 갈색의 똥 덩어리 두 개가 놓여 있지 뭐예요! 이해가 안 됐어요. 남의 집 앞에, 아니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화나고, 어이없고, 불쾌했는데 ‘범인’조차 알 수가 없으니 분풀이도 할 수 없어 답답해 죽을 것 같았죠. 외출하던 발걸음을 되돌려 그 똥을 치우는데 서럽기까지 하더라니까요.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건 제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똥과의 전쟁’은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며칠 간격으로 같은 일이 반복됐어요. 어디서도 지혜를 구할 수 없었던 저는, 초록색 검색창을 통해 마침내 그게 길고양이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길고양이라니, 길고양이라니! 그러고 보니 계단과 통로, 옆집 옥상 등 집 근처에서 저를 쳐다보던 고양이들과 어디선가 들려오던 아기 울음 같은 이상한 소리가 생각이 나더군요. 등골이 오싹했어요. 전 어릴 때부터 동물을 무척 무서워하거든요.
검색창이 시키는 대로, 전 고양이가 일을 보고 간 자리에 락스를 사다 붓고, 수시로 식초도 뿌려댔어요. 그랬더니 한동안은 아무 일도 안 생기더라고요. 마음을 놓았죠. 하지만 길고양이는 끈질겼습니다. 상추, 겨자채, 열무 같은 푸성귀를 직접 길러 먹어보겠다고 현관 바깥 통로에 만들어둔 스티로폼 상자 텃밭이 화근이었습니다. 뒤늦게 알았지만, 모래나 흙이 있는 곳은 고양이가 화장실로 가장 좋아하는 장소더라고요. 결국 도시농부가 되려던 제 꿈은, 길고양이들이 파헤쳐 못 쓰게 된 채소들과 함께 날아갔습니다. 텃밭이 되고 싶었던 스티로폼 상자는 똥밭이 되고 말았고요. 그 상자, 치우진 않았습니다. 계단이나 통로에 싸대는 것보단 그나마 흙상자가 낫겠다 싶었거든요.
그래도 신경질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들이 뭔데 남의 집 앞에다…. 날이 더 더워지면, 냄새도 더 심해지겠죠. 흙상자 때문인지, 요즘엔 집 주변에 길고양이들이 유독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어스름할 때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이런 제가 그 녀석들 보기에도 만만한지, 이젠 계단에 누워 있다 저와 마주쳐도 도망도 잘 안 갑니다.
얼마 전엔 <삼시세끼-어촌편>을 보다 울컥 화가 났어요. 고양이 ‘벌이’와 강아지 ‘산체’ 무지 귀여웠잖아요. 사랑스러운 벌이와 산체를 넋을 잃고 보다 문득 ‘어린애들이 이거 보고 고양이, 강아지 사달라고 떼쓰면 부모들이 안 사줄 수가 없을 텐데, 그렇게 사간 애들 중에 얼마나 끝까지 길러질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당장 눈앞에 귀여운 것만 생각하지,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여 이렇게 많은 길고양이가 생겨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그 피해자가 바로 저 같은 사람이고요. 그런데 언론이나 동물을 좋아하는 어떤 이들에겐, 저처럼 길고양이 때문에 피곤한 사람들이 안 보이나 봐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물은 귀엽거나 가엽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동물이 무서운 저는,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몰인정한 사람인가요? 저 지금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거 아닌가요?
도시농부가 되려던 제 꿈은
길고양이들이 파헤쳐 못쓰게 된
채소들과 함께 날아갔습니다 저도 한때는 캣타워까지 갖춘
집에서 사랑받던 냥이었다고요 길고양이 이야기 오늘은 간신히 맞지 않았어요. 분명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들어간 으슥한 골목이었는데,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고등어뼈에 정신이 팔려 동네 꼬마가 돌을 던지는 걸 몰랐어요. 이번주엔 유난히 먹을거리를 찾기가 힘들어서 어제부터 굶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운 좋게 고등어뼈를 발견하고선 정신줄을 놓은 거죠. 다행히 돌멩이가 제 허리 아래쪽에 맞기 직전 담벼락 위로 몸을 피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대여섯살이나 됐을까, 담 위에서 뒤돌아보니 꼬마애가 할머니 옆에서 낄낄대고 있더라고요. 아무리 어린애라도 그렇지,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전 서울 사당동의 한 유흥가와 바로 뒤편 주택가에 살아요. 3년 가까이 됐죠. 사람들은 저를 도둑고양이라고도 부르고, 길고양이라고도 하더군요. 처음부터 여기 살았던 건 아니에요. 공장에서 태어난 뒤 애완동물 가게로 팔려간 지 사흘 만에 전 도곡동의 한 가정으로 분양됐어요.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흰색 새끼 고양이를 좋아한다던데, 제 털은 우유처럼 희고 부드러워 금방 분양이 된 거죠. 제 밥그릇과 집은 물론, 캣타워(고양이 놀이기구)까지 갖춘 그 집에서 전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저를 원했던 그 집 아이들은 두세달이 지나자 제게 흥미를 잃어 더는 놀아주지 않았고, 아저씨도 거실 소파에 묻은 제 털을 볼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저를 차에 태워 어떤 공원에 데려다줬는데 그 뒤로 전 그 집에 갈 수 없었어요. 버려진 건지, 잃어버려진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제 길바닥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서웠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다 그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했죠.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었어요. 전 배가 고파 먹을 걸 찾는 건데 사람들은 제가 쓰레기통을 뒤져 골목을 더럽힌다며 매질을 하더군요. 멋모르고 걸어가다 자동차에 깔릴 뻔한 적도 있어요. 가끔은 골목골목 사료를 놓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나요. 거리에 나온 지 한달쯤 지났을 때, 좀 친하게 지내던 아줌마 고양이한테 들은 얘긴데 그 사료에 이상한 약을 섞어놓고 가는 사람이 있대요. 밥을 주는 사람을 ‘캣맘’이라고 하는데, 이 캣맘들이 놓고 간 사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몹쓸 약을 뿌려두는 거죠. 그 아줌마 고양이의 친구가 그걸 먹고 죽었다나 봐요. 아, 캣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2년 전 여름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수십마리가 굶어 죽었단 소문을 들었어요. 아파트 지하실이 비 피하기도 좋고, 따뜻하고,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그 동네 길고양이들이 지하실을 좀 드나들었나 봐요. 그걸 본 캣맘들이 사료를 갖다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걸 못마땅하게 여긴 주민 누군가가 지하실 문을 잠그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고양이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거예요. 그 고양이들, 그렇게 여섯달을 갇혀 죽어갔대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고양이 목숨이 9개라고요? 파리목숨이나 다를 바 없죠. 제가 지금 사는 사당동에 온 건 작년이었어요. 그때 친하게 된 오빠 고양이 덕분에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됐죠. 어떤 집 3층에 있는 흙상자를 화장실로 쓰면 된다는 점도 알려줬고, 어디에 캣맘들이 사료를 놓고 가는지도 알려줬어요. 지금은 어른이 된 제 새끼들의 아빠이기도 하죠. 몇달 전엔 저희들에게 자주 밥을 주는 캣맘의 집 앞에 오빠랑 같이 생쥐 한 마리를 잡아다 놓고 왔어요. 염치가 있지, 길고양이라고 만날 얻어먹기만 할 수 있나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귀여운 생쥐를 잡아 선물했으니, 캣맘도 좋아하겠죠?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길고양이들이 파헤쳐 못쓰게 된
채소들과 함께 날아갔습니다 저도 한때는 캣타워까지 갖춘
집에서 사랑받던 냥이었다고요 길고양이 이야기 오늘은 간신히 맞지 않았어요. 분명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들어간 으슥한 골목이었는데,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고등어뼈에 정신이 팔려 동네 꼬마가 돌을 던지는 걸 몰랐어요. 이번주엔 유난히 먹을거리를 찾기가 힘들어서 어제부터 굶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운 좋게 고등어뼈를 발견하고선 정신줄을 놓은 거죠. 다행히 돌멩이가 제 허리 아래쪽에 맞기 직전 담벼락 위로 몸을 피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대여섯살이나 됐을까, 담 위에서 뒤돌아보니 꼬마애가 할머니 옆에서 낄낄대고 있더라고요. 아무리 어린애라도 그렇지,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전 서울 사당동의 한 유흥가와 바로 뒤편 주택가에 살아요. 3년 가까이 됐죠. 사람들은 저를 도둑고양이라고도 부르고, 길고양이라고도 하더군요. 처음부터 여기 살았던 건 아니에요. 공장에서 태어난 뒤 애완동물 가게로 팔려간 지 사흘 만에 전 도곡동의 한 가정으로 분양됐어요.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흰색 새끼 고양이를 좋아한다던데, 제 털은 우유처럼 희고 부드러워 금방 분양이 된 거죠. 제 밥그릇과 집은 물론, 캣타워(고양이 놀이기구)까지 갖춘 그 집에서 전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저를 원했던 그 집 아이들은 두세달이 지나자 제게 흥미를 잃어 더는 놀아주지 않았고, 아저씨도 거실 소파에 묻은 제 털을 볼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저를 차에 태워 어떤 공원에 데려다줬는데 그 뒤로 전 그 집에 갈 수 없었어요. 버려진 건지, 잃어버려진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제 길바닥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서웠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다 그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했죠.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었어요. 전 배가 고파 먹을 걸 찾는 건데 사람들은 제가 쓰레기통을 뒤져 골목을 더럽힌다며 매질을 하더군요. 멋모르고 걸어가다 자동차에 깔릴 뻔한 적도 있어요. 가끔은 골목골목 사료를 놓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도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나요. 거리에 나온 지 한달쯤 지났을 때, 좀 친하게 지내던 아줌마 고양이한테 들은 얘긴데 그 사료에 이상한 약을 섞어놓고 가는 사람이 있대요. 밥을 주는 사람을 ‘캣맘’이라고 하는데, 이 캣맘들이 놓고 간 사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몹쓸 약을 뿌려두는 거죠. 그 아줌마 고양이의 친구가 그걸 먹고 죽었다나 봐요. 아, 캣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2년 전 여름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수십마리가 굶어 죽었단 소문을 들었어요. 아파트 지하실이 비 피하기도 좋고, 따뜻하고,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그 동네 길고양이들이 지하실을 좀 드나들었나 봐요. 그걸 본 캣맘들이 사료를 갖다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걸 못마땅하게 여긴 주민 누군가가 지하실 문을 잠그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고양이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거예요. 그 고양이들, 그렇게 여섯달을 갇혀 죽어갔대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고양이 목숨이 9개라고요? 파리목숨이나 다를 바 없죠. 제가 지금 사는 사당동에 온 건 작년이었어요. 그때 친하게 된 오빠 고양이 덕분에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됐죠. 어떤 집 3층에 있는 흙상자를 화장실로 쓰면 된다는 점도 알려줬고, 어디에 캣맘들이 사료를 놓고 가는지도 알려줬어요. 지금은 어른이 된 제 새끼들의 아빠이기도 하죠. 몇달 전엔 저희들에게 자주 밥을 주는 캣맘의 집 앞에 오빠랑 같이 생쥐 한 마리를 잡아다 놓고 왔어요. 염치가 있지, 길고양이라고 만날 얻어먹기만 할 수 있나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귀여운 생쥐를 잡아 선물했으니, 캣맘도 좋아하겠죠?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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