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옆집 반려동물과 공존하기
애견·애묘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공존 모색하는 지자체 실험들
애견·애묘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공존 모색하는 지자체 실험들
경기도 안양시 안양8동 명학공원은 도시에선 보기 드물게 수령이 50~60년씩 된 벽오동나무, 측백나무, 향나무, 느티나무 등이 늘어선 곳이다. 작은 숲과 어우러진 산책로와 놀이터, 분수대, 체력단련기구 등이 잘 조성돼 있어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원래 이 자리엔 가축들의 질병과 위생 등을 관리하는 경기도 가축위생시험소가 있던 자리였다. 1968년부터 30년 동안 이곳에 있던 가축위생시험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 경기도에선 이 땅을 개발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려고 구상했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달라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10년 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도심에서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 필요하다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2009년 안양시가 이 땅을 매입해 조성한 곳이 명학공원이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든 명학공원 한편엔 ‘축혼비’가 세워져 있다. 가축위생시험소 직원들이 죽은 가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설치했던 자그마한 비를 기념해 만든 것으로, 이곳이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공원은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안양8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오토바이·자전거·애완견 출입금지’라고 쓴 커다란 펼침막을 공원 입구 등 세 곳에 내다걸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반려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이 공원에 오는 것을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이를 부당하다고 여긴 주민이 안양시청에 문의하자, 시청에선 ‘목줄과 배변봉투를 지참하면 출입이 가능하다’고 알려주며 어린이 놀이터와 분수대에만 애완견 출입이 안 된다는 펼침막을 공원에 붙여줬다. 하지만 주민자치위에선 반려견과 산책 나온 주민들이 공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목줄과 배변봉투를 지참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릴 수 있다’고 시청에서 써서 붙인 펼침막도 떼어버렸다. 뗐다 붙였다 펼침막을 둘러싼 주민과 주민자치위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반려견의 명학공원 출입을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전은재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무조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곳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가 담긴 곳 아니냐”며 “반려견에게 목줄을 매고, 입마개를 씌우는 등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한 채 같이 공원을 걸어보자고 주민자치위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답답해했다.
수원시 16개 공원에
반려견 배변봉투함 설치
서울 강동구청
길고양이 급식소
올해 60곳으로 늘려 이와는 다른 경우도 있다. 고렴근린공원 등 경기 수원시의 16개 공원엔 반려견을 위한 배변봉투함이 설치돼 있다. 수원시의 공원 이용객들한테서 반려견들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는 바람에 악취도 심하다는 민원이 쏟아지자 시 공원관리사업소는 2011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공원관리사업소는 수원시 전역의 45개 공원 이용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애완견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사람은 전체 이용객의 5%지만 이들 대부분인 94%가 배변봉투와 목줄 없이 산책에 나선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공원관리사업소는 공원에 반려견 출입을 막는 대신, 배변봉투함을 만들어 배변봉투를 늘 비치하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이런 선택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개인이 키우는 개똥을 치우는 데 왜 세금을 들이냐고 반발하는 이도 있고, 공짜라며 무더기로 배변봉투를 가져가는 이도 있다.
서울 강동구청이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도 비슷한 맥락이다. 애묘인들 사이에서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은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처음 18곳이었던 급식소는 올해 60곳으로 늘어났고, 개체수 조절을 위한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뜯어놔 골목이 엉망이 됐다’는 민원은 줄었지만, ‘급식소 때문에 길고양이가 더 늘어난 것 같다’는 민원은 증가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과, 왜 고양이를 들끓게 하냐고 항의하는 주민들의 다툼도 여전히 존재한다.
관건은 ‘배려’와 행정기관의 노력이다. 접점을 이루기 어렵더라도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행정기관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반려견이나 길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 해답을 찾고 있다. 1981년 길고양이 급식을 시작한 미국 뉴욕시는 올해를 길고양이 안락사 없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시민단체와 함께 중성화 수술과 입양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고양이가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여겨온 덕에 중성화 수술 자체도 흔치 않고, 길고양이에게 무척 관대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반려동물이나 길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동물권만 주장하거나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반대로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그 동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령 캣맘들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전에 먼저 주변의 양해를 구하고, 길고양이가 싫은 사람들은 고양이 때문에 쥐가 사라졌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반려견 배변봉투함 설치
서울 강동구청
길고양이 급식소
올해 60곳으로 늘려 이와는 다른 경우도 있다. 고렴근린공원 등 경기 수원시의 16개 공원엔 반려견을 위한 배변봉투함이 설치돼 있다. 수원시의 공원 이용객들한테서 반려견들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는 바람에 악취도 심하다는 민원이 쏟아지자 시 공원관리사업소는 2011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공원관리사업소는 수원시 전역의 45개 공원 이용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애완견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사람은 전체 이용객의 5%지만 이들 대부분인 94%가 배변봉투와 목줄 없이 산책에 나선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공원관리사업소는 공원에 반려견 출입을 막는 대신, 배변봉투함을 만들어 배변봉투를 늘 비치하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이런 선택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개인이 키우는 개똥을 치우는 데 왜 세금을 들이냐고 반발하는 이도 있고, 공짜라며 무더기로 배변봉투를 가져가는 이도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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