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스타셰프의 메뉴판
식재료 꼼꼼히 소개한 ‘밍글스’ , 아이같은 그림 속 재미 더한 ‘마누 테라스’ , 반전의 묘미 담은 ‘루이쌍끄’
식재료 꼼꼼히 소개한 ‘밍글스’ , 아이같은 그림 속 재미 더한 ‘마누 테라스’ , 반전의 묘미 담은 ‘루이쌍끄’
‘셰프테이너’(셰프와 엔터테이너를 합성한 신조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요리사 전성시대다. 각자의 매력을 음식에 쏟아붓는다. 스타 셰프들의 메뉴판은 무엇이 다를까?
꼼꼼한 성격 강민구
초기에 매일 메뉴판 교체
직접 그린 이찬오
식당 열기 전부터 화제
음식 나오는 시간 표기한 이유석
조리에 들인 정성 담고자
1. 강민구 | 꼼꼼히 적은 식재료 설명서
요즘 강민구(31) 셰프는 개업 때보다 바쁘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 ‘라스트랑스’(L’astrance)에서 일주일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자신이 운영하는 ‘밍글스’의 메뉴판을 바꿨다. 신메뉴가 추가됐다. 바뀐 ‘콘텐츠’를 경험해보겠다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메뉴판은 오너 셰프(주인 겸 요리사)를 닮는다. 꼼꼼하고 허세가 없는 강씨의 성격은 빡빡한 한 권의 책과 같다. 그가 내미는 메뉴판은 가로 15㎝, 세로 21㎝. 성인 남자 손바닥만하다. 얼굴을 온통 가려버릴 정도로 크지도, 금테를 두르지도 않았다. 고작 2쪽.
메뉴판 첫머리에는 ‘디너 코스 2015, 스프링’이라 적혀 있다. 이어 코스 순서대로 나오는 식재료들이 나열돼 있다. 간결한 영어와 한글이 한 조다. ‘육즙이 뚝뚝 흐르는’이라든가 ‘오독오독 씹히는’ 같은 혀의 감각을 깨우는, 화려한 미사어구도 없다. 강씨는 “코스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다. 손님은 코스가 나올 때마다 이 작은 메뉴판을 보면서 먹는다. ‘바닐라 만두’, ‘간장 피칸’, ‘된장 크렘블레’ 등. 동서양 음식의 연애사 같다.
처음부터 이런 메뉴판은 아니었다. 메뉴판을 매일 새로 만들고 예약 손님의 이름까지 적었다. “매일 다른 재료를 쓰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비생산적이었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날도 많았고, 직원들도 힘들어했다.” 지나친 정성이 오히려 번거로움을 만들었다. 그의 메뉴판에는 역점 사업이 투영돼 있다. 식재료 앞에 작은 원이 3개 혹은 4개가 그려져 있다. 원은 색이 다 다르다. 녹색은 발효초, 까만색은 간장, 갈색은 고추장, 더 진한 갈색은 된장, 오렌지색은 허브와 스파이스(향신료)를 뜻한다. “음미하면서 이것들(양념들)이 한 음식에서 어떤 조화로 맛을 내는지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적었다.” 장아찌도 ‘Jang-a jii’라고 적었다. “외국인을 동행했을 때 영어가 능숙한 이도 전문적인 음식 영역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메뉴판은 레스토랑의 여행 안내서라고 말한다. 성실하게 작성된 안내서는 요리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
2. 이찬오 | 셰프가 직접 그린 그림
강민구 셰프가 이성적인 모범생 같다면 23일 정식 개업하는 ‘마누 테라스’의 이찬오(31) 셰프는 즉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예술가다. 메뉴판은 액자에 끼워두고 싶을 정도로 독특한데,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때 묻지 않은 발랄함이 표출돼 있다. 모두 이 셰프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다. 그는 작은 삽화와 단어 몇 개를 한 조로 묶어 한 가지 음식을 표현한다. 얇은 재생지에 파스텔로 툭툭 여러 가지 이미지를 그린 메뉴판은 미소를 부른다. 그는 “요리는 창작”이라며 창작의 시작은 메뉴판부터라고 말한다. “내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오리, 푸아그라, 오미자소스’란 한글 위에는 걸어가는 오리가, ‘송아지 안심된장구이, 명이나물’에는 웃는 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성게알 녹두무침’은 피자와 닮은꼴인 원에 성게알을 형상화한 점들이 박혀 있다. 지글지글 팬에 피어오르는 열기는 굵고 둥근 선이다. 그는 ‘감’ 따라 튀어나오는 감정을 그렸다. “즉흥적인 감에 따라 어린아이도 공감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메뉴판을 만들었다.” 메뉴판 제작은 요리 못지않은 창작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계속 직접 그림을 그려서 표현할 생각이다.
3. 이유석 셰프 | 음식 나오는 시간까지 안내
밍글스와 마누 테라스는 코스요리 전문 레스토랑이다. 단품 레스토랑의 메뉴판은 다를까? ‘루이쌍끄’의 이유석(31) 셰프는 지상파 다큐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셰프로서는 드물게 시트로엥 자동차의 광고까지 찍었다. 그의 메뉴판에는 유독 숫자가 눈에 띈다. ‘20min’, ‘10min’, ‘30min’, ‘25min’ 등. 이 숫자들은 ‘아프리카치킨’, ‘달고기’, ‘통후추스테이크’, ‘뚝뜨’ 등의 음식명과 한 조다. 음식이 손님 앞까지 나오는 시간이다. 정성을 들이는 시간만큼 맛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에 기다려 달라는 당부의 표현이다. 폐업과 창업이 속출하는 강남 신사동에서 5년을 버텨낸 비결이다.
메뉴판은 반전의 묘미도 선물한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은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프랑스풍의 비스트로다. 가볍게 음식과 와인 등의 술을 즐기면서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발랄한 메뉴판을 기대한다. 하지만 우아하고 은은하다. 그의 메뉴판은 두꺼운 겉장과 금박 장식이 되어 있다. 음식명은 딱딱한 한글과 영화 <발몽>의 연애편지처럼 부드러운 영어 필기체다. 이씨는 “코스가 미니시리즈 드라마면 단품은 영화다. 한 편에서 승부가 난다”며 “단품마다 정성을 쏟는다는 점을 메뉴판에 표현했다”고 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초기에 매일 메뉴판 교체
직접 그린 이찬오
식당 열기 전부터 화제
음식 나오는 시간 표기한 이유석
조리에 들인 정성 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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