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4일 케이티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들. 강재훈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나의 야구 이야기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올해 프로야구 정규 시즌…열혈팬들이 말하는 ‘야구란 무엇인가’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올해 프로야구 정규 시즌…열혈팬들이 말하는 ‘야구란 무엇인가’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다. 18일 시작하는 플레이오프와 26일 시작하는 한국시리즈까지 끝나야 ‘최종 결산’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만으로도 올해 야구는 대단했다. 시즌 초반, ‘만년 꼴찌’ 한화 이글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빛내며 마약 같은 야구로 인기를 끌었고, 중반 들어선 ‘막내’ 케이티(kt) 위즈가 놀라운 승부사로 변모해 화제를 모았다. 중위권 팀들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승부에 도전하기 위한 5위 경쟁을 정규 시즌이 끝나기 사흘 전에야 끝낼 정도로 치열한 날들을 보냈고, 싱겁게 1위를 고수할 것 같던 삼성 라이온즈는 엔씨(NC) 다이노스의 막판 대추격에 초조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매일같이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대관절 야구가 뭐라고 경기 있는 날은 약속도 피하게 되고, 중계방송도 모자라 하이라이트 재방송까지 주야장천 끼고 산단 말인가. 당최 야구가 뭐길래,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야구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선수들의 인스타그램을 쫓아다닌단 말인가.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엘지(LG) 트윈스의 전신인 엠비시(MBC) 청룡 때부터 이 팀을 응원해온 차병기(42)씨는 “팬들끼리 ‘왜 하필 엘지를 좋아해서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잘하는 팀을 좋아하면 좋을 텐데, (팀을 바꾸는 게) 안 된다”고 했다. 엘지는 어마어마한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체로 성적은 부진한 ‘엘(지)롯(데)기(아) 동맹’의 한 축이다. 그런데도 차씨는 야근을 할 때면 한쪽 모니터에 중계방송을 틀어놓고 일하다, 일을 마쳐도 야구가 끝나야 퇴근하는 생활을 한다. 어이없이 졌을 땐 분해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는 “부모님이 싫다고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엘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나의 일부이자 삶의 한 부분”이라며 “전날 경기에 졌더라도 (평일 경기 시작 30분 전인) 오후 6시가 되면 늘 설렌다. 올해는 이진영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친 날(7월9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현장에서 끝내기 홈런을 본 날”이라고 했다. 그에게 야구는, 그리고 엘지는 자신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싫어도 버릴 수 없는 부모처럼
실패해도 비난할 수 없는 가족처럼
아침에 눈뜨면 세수하는 것처럼
떼려야 뗄 수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는
그건 야구, 그건 사랑 기아(KIA) 타이거즈 팬 사이에서 ‘응원의 신’으로 유명한 서홍석(33)씨에게도 야구와 기아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세수하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한 해 평균 70차례의 경기를 직접 보러 가는데, 올해는 일이 바빠 50차례‘밖에’ 못 갔다. 정규 시즌 경기가 모두 144차례 열리니, 무려 3경기에 한번꼴로 ‘직관’(야구장에 가서 직접 관람하는 것)을 한 거다. 살고 있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이 맞는 날이면 전국 어디든 경기를 보러 가는데, 이동경비를 포함하면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10만원은 너끈히 든다. 그래도 좋다. “에스케이(SK)랑 붙은 광주 경기(7월23일)를 당일치기로 보고 왔다. 내내 지다가 9회말에 김원섭 선수가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쳐서 역전승을 했는데, 이런 경기는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보고 와도 하나도 안 아깝다”고 했다. 김경목(32)씨에게 야구는 ‘동생들’이다. 그는 케이티가 2군 리그인 퓨처스 리그에 있을 때부터 팬이 됐다. 마침 잠시 일을 쉬고 있던 때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자주 보러 갔다. 오래된 다른 팀들의 ‘원년 팬’이라는 지인들이 항상 부러웠는데, 살고 있는 경기도 화성 근처를 연고로 한 팀이 생긴 게 몹시 좋았다. 2군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수들과도 안면을 트고 호형호제하게 됐다. 올해는 70경기를 보러 갔다. “아는 동생이 마운드에 올라온다거나, 2군에 있다가 1군에 데뷔하면 기분이 좋다. 박세웅 선수가 롯데로 트레이드됐을 땐 정말 아쉬웠다. 신생 팀이니까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를 봤는데,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던 박세웅 선수가 그렇게 되니 충격이 컸다.”
야구장 분위기에 취한 이들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팬’ 케리 마허(61)는 한국에 처음 온 2008년, 부산 사직구장에 경기를 보러 갔다가 열정적인 응원 분위기에 홀딱 반했다. “관중의 놀라운 에너지와 열정에 흥분됐다. 응원가와 응원하는 모습, 가족끼리 와서 경기를 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오페라를 보러 가는 거라면, 한국 야구, 특히 사직구장에 야구를 보러 가는 건 로큰롤 공연을 보러 가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미국에 있는 친구한테 했다”고 한다. 그는 올해 딱 3경기를 빼고 롯데의 모든 경기를 직관했다. 경기 시작하기 한시간 전쯤 야구장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30분 전쯤엔 자리를 찾아 앉는다. 5월20일 경기 때 시구자로 나서고, 최준석 선수에게서 그의 유니폼을 직접 선물받은 뒤로 워낙 유명해져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관중이 많아 시간은 금방 간다. 백수냐고? 아니다. 경남 양산의 영산대 평생학습본부 교육연수원에서 영어교사 심화연수 과정을 맡고 있는 교수다. 강의는 오전에 하기 때문에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다. 홀로 한국에서 지내는 그에게 롯데와, 경기장에서 만나는 롯데 팬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는 “선수들의 헌신, 팬들의 열정을 존경한다. 가족이 실수나 실패를 한다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게 되지 않듯, 롯데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을 끊을 순 없다. 진짜 팬은 그런 거 아닌가”라고 했다.
팬들한테서 느끼는 감동은 한화 이글스의 김면중(38)씨도 마찬가지다. 빙그레 시절 어린이회원부터 시작한 ‘독수리 사랑’은 군 시절 100일 휴가를 나와 집에도 안 가고 야구장을 찾아 한국시리즈 우승 장면을 직접 보며 아이처럼 운 경험으로 이어졌고, 성적이 부진했던 지난 몇년 동안은 우울감을 느끼면서도 야구를 보는 ‘보살 팬’ 경지에 오르게 했다. 김씨는 그런 자신처럼 ‘꼴찌 한화’를 ‘최강 한화’라 부르며 응원해온 팬들이 자랑스럽다. “8회에 육성 응원을 할 때면 전율을 느낀다. 아무리 꼴찌여도 우리는 당당하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넥센에서 트레이드돼 온 이성열 선수가 첫 타석에 섰을 때(4월9일), 관중석의 한화 팬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진심으로 응원하는지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성열 선수가 그날 홈런을 치고 들어오다가 한 여성 팬이 진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받는 장면도 있었다. 그렇게 선수와 팬이 하나가 돼 소통을 하는 순간이 좋다.” 김씨의 아내는 그에게 또다른 감동을 준 한화 팬이다. 지난해 부진한 성적 때문에 김씨가 우울감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당시 여자친구이던 아내는 혼자 대전구장을 찾아갔다. 아내는 가슴팍에 ‘김면중 결혼하자’고 쓴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방송 카메라에 잘 잡히는 포수 뒤 관중석에 앉아 그에게 중계방송을 보고 있냐고 전화를 걸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이벤트를 생각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우울감은 사라졌고, 두 사람은 결혼해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야구는 모두에게 다른 의미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야구를 즐긴다. 미국의 야구 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를 “야구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품”이라고 정의했는데 ‘팬들이 만들어내는 예술품’이라 해도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선수들의 야구가 끝나도, 팬들의 야구는 계속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실패해도 비난할 수 없는 가족처럼
아침에 눈뜨면 세수하는 것처럼
떼려야 뗄 수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는
그건 야구, 그건 사랑 기아(KIA) 타이거즈 팬 사이에서 ‘응원의 신’으로 유명한 서홍석(33)씨에게도 야구와 기아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세수하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한 해 평균 70차례의 경기를 직접 보러 가는데, 올해는 일이 바빠 50차례‘밖에’ 못 갔다. 정규 시즌 경기가 모두 144차례 열리니, 무려 3경기에 한번꼴로 ‘직관’(야구장에 가서 직접 관람하는 것)을 한 거다. 살고 있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이 맞는 날이면 전국 어디든 경기를 보러 가는데, 이동경비를 포함하면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10만원은 너끈히 든다. 그래도 좋다. “에스케이(SK)랑 붙은 광주 경기(7월23일)를 당일치기로 보고 왔다. 내내 지다가 9회말에 김원섭 선수가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쳐서 역전승을 했는데, 이런 경기는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보고 와도 하나도 안 아깝다”고 했다. 김경목(32)씨에게 야구는 ‘동생들’이다. 그는 케이티가 2군 리그인 퓨처스 리그에 있을 때부터 팬이 됐다. 마침 잠시 일을 쉬고 있던 때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자주 보러 갔다. 오래된 다른 팀들의 ‘원년 팬’이라는 지인들이 항상 부러웠는데, 살고 있는 경기도 화성 근처를 연고로 한 팀이 생긴 게 몹시 좋았다. 2군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수들과도 안면을 트고 호형호제하게 됐다. 올해는 70경기를 보러 갔다. “아는 동생이 마운드에 올라온다거나, 2군에 있다가 1군에 데뷔하면 기분이 좋다. 박세웅 선수가 롯데로 트레이드됐을 땐 정말 아쉬웠다. 신생 팀이니까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를 봤는데,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던 박세웅 선수가 그렇게 되니 충격이 컸다.”
5월20일 부산 사직구장 전광판에 띄워진 이날 시구자 롯데 자이언츠 팬 케리 마허와 시포자 최준석 선수 사진. 케리 마허 제공
김면중씨 아내는 가슴팍에 ‘김면중 결혼하자’고 쓴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방송 카메라에 잘 잡히는 포수 뒤 관중석에 앉아 김면중에게 중계방송을 보고 있냐고 전화를 걸었다. 김면중씨 제공
김면중씨 아내가 입었던 주황색 티셔츠. 김면중씨 제공
3월29일 두산 베어스와 엔씨 다이노스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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