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12월엔 당신! 정리하라, 자신을 사랑하라

등록 2015-12-09 20:32수정 2015-12-10 14:28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덜어내고 정리하기
한해를 마무리하며 옷부터 인간관계까지 불필요한 모든 것을 덜어내는 사람들
12월이다.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인위적인 시간의 구획이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정리’를 통해 한해를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 옷장이든, 인간관계든, 정리는 당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6년차 직장인 최미진(가명·28)씨는 얼마 전 자기 방에 있는 옷장과 화장대, 책장을 죄다 엎었다. 옷장을 꽉꽉 채운 옷 가운데 안 입는 걸 골라내 쓸 만한 건 재활용 이벤트를 하는 의류업체와 헌옷을 모으는 곳에 갖다 줬고, 못 입을 옷을 버리고 나니 겨울옷의 4분의 1이 줄었다. ‘여행 갈 때 쓰겠지’ 싶어 화장대 서랍 구석구석에 모아둔 샘플을 비롯해 안 쓰는 화장품,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도 죄다 버렸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소설과 대학 때 전공서적은 중고서점에 넘겼는데 20만원어치나 됐다. 그렇게 버리고 났더니 최씨는 “뿌듯해졌다”고 했다. “정리는 혼자 하는 거잖아요. 버릴 물건들을 보면서 이거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그때 뭐가 좋았고 나빴는지 되돌아보는 거죠. 내가 이만큼이나 많은 걸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나니까 함부로 물건을 잘 안 사게 되기도 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이맘때쯤 인터넷 쇼핑을 잔뜩 했을 텐데, 지금은 일단 장바구니에 넣은 것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도 정리가 습관인 최씨지만, 올해 그가 유난스럽게 정리에 몰두한 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 전 최씨는 출근 준비를 하다 극도의 어지럼증을 느끼고 방바닥에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병원에선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 됐다. 몇년 전부터 앓고 있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다스리려고 평소 누구보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자신해온 터였다. “회사 일에도 만족하고 있고, 이성 문제나 친구 문제도 없어요. 일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집에 돌아오면 나를 위해 팩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힐링’을 했고요. 그런데 스트레스라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쌓이고 널브러진 물건 치우면
어지러운 내 마음과 맞닥뜨린다
회피했던 고민 직시하고
집착했던 가짜를 버리자
내 중심은 결국 나 자신이니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한 템포 끊고 새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최씨는 대대적인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에 그동안 덮어놓고 ‘아, 오늘도 잘 끝냈다’고 생각했던 거죠. 일기를 쓰든 뭘 하든 정신적으로 나를 좀 돌아봤어야 하는데, 팩이나 스트레칭 같은 물리적인 힐링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었고요. 스트레스를 관리한 게 아니라 그렇게 외면한 덕분에 몸으로 신호가 나타난 거예요.” 방 안에 쌓아둔 갖가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게 됐고, 자신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최씨는 곧 혼자 제주도를 여행할 계획도 세워뒀다. “혼자 며칠 지내면서 손편지를 쓸 생각이에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한테 고맙고 서운한지 한번 돌아보려고요.”

방 안을 정리했더니 마음이 정리됐다고? 심리학적으로 이는 관련성이 있는 얘기다. 방 안을 뒤죽박죽 어지럽히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문제나 불안을 숨기려는 행동으로 풀이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일단 정리하고 나면 어수선한 방 곳곳으로 분산돼 있던 신경을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향하도록 할 수 있다. 무언갈 쌓아두는 일도 현재를 가리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수필가 도미니크 로로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이라는 책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행복한 삶을 이루어주고 훗날 추억으로 간직할 물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물건을) 보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결국 인생을 추측에 매달려 살아가게 된다. 행복의 실체인 현재는 외면한 채로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물건 정리가 곧 내면 정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 학창 시절 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어질러진 책상이 거슬려 그걸 정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빨리 끝내야 할 중요한 업무가 있는데 스팸메일이 쌓인 전자우편함을 보고는 그걸 정리하는 데 매달리거나 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터. ‘진짜 정리할 일’ 때문에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을 직면하는 대신 ‘가짜 정리할 일’을 해결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경우다. 진짜 정리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정리 전문가들이 “정리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데서 출발한다. 정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다”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수인(가명·37)씨는 ‘관계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미숙하고 무례한 일 처리 때문에 불쾌함을 느꼈던 상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곤 자신이 느낀 불편한 감정을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상대도 이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씨는 올해가 가기 전, 이런 전화를 몇 통 더 할 생각이다. 얼마 전, 이씨는 한해 동안 자신이 쓴 다이어리와 일정표를 들춰보다 자신이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준 일에 이르면 감정의 진폭이 커지는 걸 느꼈다. 자기가 잘못한 사람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한번 사과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문제는 상대가 잘못한 경우였다.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데, 정작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 “당신이 잘못했고, 그 잘못으로 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는 말을 그때도, 지금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이어리를 보다가, 내가 화를 내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어요. 명백히 상대의 잘못인데도, 내가 화를 내면 관계가 망가지거나 상대가 상처를 입을까봐요. 똑같은 문제로 지속적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들과는 아무리 오래되고 친한 것처럼 보여도 내 마음을 닫아버렸어요.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데 이도 저도 못하고 관계에 끌려다닌 거예요. 겉보기엔 인간관계가 넓고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죠.” 이씨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음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갖고 있는 쓸데없는 것을 버리는 것, 즉 정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존재하는 나’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면 아무도 나의 안전과 주체성을 빼앗거나 위협할 수 없다. 나의 중심은 나 자신 안에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