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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리 이상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

등록 2016-01-06 20:35수정 2016-01-07 13:32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독특한 작업을 해온 라온 레코드의 전영기(왼쪽), 김창훈 감독.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독특한 작업을 해온 라온 레코드의 전영기(왼쪽), 김창훈 감독.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비무장지대 소리 담은 음반 <카르마-DMZ 사운드스케이프> 만든 라온 레코드의 김창훈·전영기 감독
1980~90년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인기를 끌었다. 이미 노래는 널리고 널렸는데 무슨 노래를 찾는다는 걸까. 노래를 뛰어넘는 진정한 노래를 찾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사계’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찾사의 노래들은 노래 이상의 시대 모습을 담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결국 노래가 아닌 ‘시대’였다.

2016년인 지금, 노찾사처럼 ‘소리 이상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지구의 리듬­제주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독특한 작업물을 낸 ‘라온 레코드’가 바로 그들이다. 이 작업물에는 제주도 월정해변의 파도 소리나, 아부오름의 삼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등이 담겨 있다. 멜로디나 가사 없이 자연의 소리만이 담겨 있기 때문에 보통의 음악 ‘앨범’으로 생각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사실 이들의 작업물은 앨범이라고 불리기보다는 하나의 ‘아트워크’로 평가받는다. 출시 당시 ‘소리 풍경’(사운드스케이프)이라는 콘셉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주 사운드스케이프>는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에서도 판매중이다.

<카르마-DMZ 사운드스케이프> 음반.  라온 레코드 제공
<카르마-DMZ 사운드스케이프> 음반. 라온 레코드 제공

최근 이들은 <카르마­디엠제트(DMZ)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두번째 작업물을 내놨다. 이번에는 강원도 철원읍 포사격장, 양구 을지 지오피(GOP) 등에서 녹음한 소리, 연천의 두루미 소리 등을 40쪽에 이르는 글·사진과 함께 담았다. 카르마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뜻한다. 왜 이런 작업을 계속하는지, 어떠한 것을 전하고 싶었는지 라온 레코드의 김창훈·전영기 감독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둘의 대답을 딱히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풀었다.

영화 동시녹음 엔지니어 일 하다
제주 자연의 소리 녹음해 첫 음반
DMZ 소리에선 전쟁의 ‘업’ 느껴져
스피커보다 이어폰으로 들으시길

디엠제트에서 녹음 작업을 하는 모습.
디엠제트에서 녹음 작업을 하는 모습.
디엠제트에서 녹음 작업을 하는 모습.
디엠제트에서 녹음 작업을 하는 모습.

­-어떻게 소리를 담는 작업을 하게 됐나? 원래 직업은?

“영화 동시녹음 엔지니어다.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가진 건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촬영 때 제주도에 머무르면서다. 보통 영화 후반작업에 쓸 별도의 녹음을 하는데, 영화와 별개로 제주도의 소리를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2013년 시각장애인 개그맨 이동우의 다큐멘터리 촬영차 다시 제주도를 찾았는데, 그때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왜 디엠제트인가? 불교의 ‘업’을 제목에 넣은 이유는?

“지난해 <제주 사운드스케이프>작업을 마치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더 찾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소리 말이다. 디엠제트가 떠올랐다. 마침 디엠제트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하면 제작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작업 장소로 확정했다.(작업 과정은 다큐영화 <디엠제트 사운드스케이프-시간의 소리>로 만들어져 지난해 9월 디엠제트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처음 디엠제트에 방문해 들은 소리에서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이 주는 푸근함보다는, 허전하고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전쟁과 휴전 그리고 사람들이 가져온 업 말이다.”

­-시디 디자인이 독특하다.

“표지에 동판을 붙였다. 각기 다른 산화작업을 해서 색과 질감이 전부 다르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리기를 원하는 앨범의 콘셉트와도 맞아떨어진다. 1000장 한정 판매다.”

­-디엠제트 특성상 녹음 작업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녹음은 2014년 겨울부터 2015년 10월까지 진행했다. 일반인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은 곳이라 국방부의 허가를 받고 항상 군인과 동행해야 했다. ‘피아(적군과 아군) 식별’ 조끼도 입어야 했다. 대청도에서 녹음을 할 때는 군인이 동행하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무장한 군인이 ‘뭐 하는 거냐’며 찾아왔다. 사진이 아니고 소리를 따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면 이해를 했지만, 전반적으로 녹음 작업이 순탄하지는 않았다.(웃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작업 초반에 어떤 소리를 담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할 때였다. 계속해서 소리를 들어도 ‘감’이 안 오는 거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철원에 있는 사찰 도피안사를 발견하게 됐다. 경내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이어서 범종이 울리는데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흩날리는 비바람 소리가 마치 소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 같았고, 그것을 덮어버리는 범종 소리가 해답처럼 들렸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

“장소 찾는 것이 우선이다. 녹음은 ‘더미헤드’라고 불리는 특수한 녹음장치로 진행한다. 인간의 머리 형상을 본떠 만든 녹음장치로, 인간이 실제 귀로 듣는 것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녹음하기 위한 것이다. 모형에 달린 양쪽 귀 크기도 다르다. 실제 인간의 양쪽 귀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당 가격이 2000만원 넘는 고가 장비다. (라온 레코드도 장비가 없어 빌려서 작업했다고 한다.) 자동차 연구소에서 차 엔진 소리나 오디오 등을 세팅할 때도 사용된다. 이 더미헤드의 위치를 잡는 것이 우선이다. 높낮이, 거리 등을 고려해 여러번 모니터링해보고 최적의 위치를 찾아 녹음을 시작한다. 장소와 위치를 잡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인간의 머리 형상을 본뜬 녹음 장치 ‘더미헤드’.
인간의 머리 형상을 본뜬 녹음 장치 ‘더미헤드’.

­-실제 녹음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

“반나절 이상 걸린다. 중간중간 외적인 소리(잡음)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장소를 가장 적합하게 설명해주는 소리를 찾기 위해 끈기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녹음된 소리를 어떠한 편집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시디에 수록했다.”

­-일반 청취자들은 어떠한 점에 주목해서 들어야 하나?

“일단 스피커보다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듣길 추천한다. 더욱 생생하게 들릴 것이다. 소리 자체만을 듣지 말고 소리를 들으며 그려지는 풍경을 상상하고, 그 풍경에 담긴 메시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도피안사의 범종 소리의 경우, 범종이 울렸을 때 그 파장이 비를 건드리면서 나는 소리가 있다. 마치 파도 소리 같다. 듣는 이에 따라서 소리가 달리 느껴질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소리가 여유 있게 들리고, 본인이 조급하면 소리도 조급하게 들릴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녹음 성능이 워낙 좋다. 일반인들도 본인이 원하는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좋은 팁이 있다면?

“맞다. 우리도 스마트폰 녹음 성능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우선 가장 큰 소리를 피해야 한다. 직접적인 소리를 피하라는 것이다. 만약 파도 소리를 녹음한다고 가정하면 파도에 직접 마이크를 대는 것보다 그 파도와 주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사진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찍혀야 자연스럽게 잘 나오듯 소리도 마찬가지다. 작정하고 무언가 녹음하고 있으면 누군가 “지금 뭐 하냐”고 분명 물어올 것이다. 자연스러운 게 핵심이다. 그러면 소리 이상의 것이 잡힌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상중에 있다. 틈날 때마다 남산 엔(N)서울타워 등을 찾으며 녹음을 하고 있다. 주로 자연의 소리를 담아왔는데, 이번에는 대도시인 서울의 소리를 담아보고 싶다. 앞으로 나올 작업물은 시디 형태가 아니라 고음질의 무손실 음원이 담긴 유에스비(USB)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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