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을지로 구석구석 탐방
서울시청 앞~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74㎞ 구간…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
서울시청 앞~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74㎞ 구간…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
을지로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거리명 ‘을지로’는 서울시청 앞부터 시작하는데, 을지로7가(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2.74㎞에 불과하다. 보통 성인이 빠른 걸음으로 30~40분이면 을지로의 처음과 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을지로의 중심인 3·4가 정도까지만 간다면 시간은 더 단축된다.
을지로 탐방은 을지로입구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동쪽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을지로입구역 근처는 명동과 소공동이 연결돼 있는, 그야말로 번화가다. 이곳은 서울의 현대다. 을지로2가는 최근 재개발이 이뤄져 을지로1가 못지않게 번듯한 건물들이 올라가 있다. 하지만 아직 재개발이 되지 않은 건물 뒤편에 가면 커피한약방처럼 독특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체인점이 많아진 설렁탕집 이남장의 본점도 을지로2가 쪽 뒷골목에 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을지로3가로 오면서 분위기는 확 바뀐다. 스카이라인이 대폭 낮아진다. 타일·도기를 파는 매장이 집중돼 있는데, 진열된 욕실 제품을 보는 재미가 있다. 욕실 인테리어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카페 겸 예술공간인 호텔수선화에서 차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다. 을지로4가 쪽으로 가면 조명 특화거리와 산림동 조각 특화거리가 나온다. 조각 특화거리에는 서울의 과거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허름한 골목 안을 걷다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그 가운데 써클활동(을지 4호·designcircleactivity.com)은 폐자전거로 각종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작업실이다. 1층에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둘러봐도 좋겠다. 인터넷 소품 쇼핑몰 ‘텐바이텐’에서 판매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제품이 많다. 전시장에서 직접 살 수도 있다.
산림동 뒷골목이 너무 후미져 무섭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용기 내어 구석구석 돌아보는 게 좋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오래된 포스터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은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엔 을씨년스러워도 좀 걷다 보면 오히려 포근해진다. 중구청 담당 직원은 “실제로 범죄 위험은 없다. 여성인 나도 한밤중에 혼자 다닌다”고 했다. 구불구불한 산림동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청계천이 나온다. 청계상가 2층에 올라가 을지로 일대를 내려다보는 것도 놓치지 말자. 걷다가 출출해진 배를 채워줄 맛집은 23면 기사를 참조하면 된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써클활동
을지로 산업용어 풀이
빠우, 시보리가 뭐야?
을지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간판이 많이 보인다. 대부분 일본어에서 유래된 산업용어들이다. 뜻을 알면 을지로 유람이 더 즐거워질 수 있다.
로구로는 물레나 선반을 뜻하는 ‘녹로’의 일본식 발음 ‘로쿠로’에서 온 말이다. 목재나 도자, 금속 등 재료를 회전시켜 표면을 성형하거나 가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빠우는 가죽 표면을 부드럽게 닦는다는 뜻을 가진 ‘버프’(Buff)의 일본식 발음 ‘바후’에서 온 말이다. 지금은 가죽이 아니라 주로 금속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광이 나도록 연마제를 바르고 문지르는 작업을 말한다. 빠킹은 재료의 이음매나 틈새로 공기나 물이 새지 않도록 금속이나 고무 등으로 제작한 장치를 말한다. 영어 ‘패킹’(Packing)이 어원이다.
스카시는 ‘오려낸다’는 뜻의 일본어다. 간판용 글씨 등을 만들 때 많이 쓴다. 간판을 만들기 위해 글자를 오려내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쟌넬은 ‘채널’(Channel)이 어원이다. 앞에서 설명한 스카시로 만든 제품 등을 철제 빔 등에 붙여 입체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입체감 있는 글씨로 제작된 간판이나 건물 외벽 사인물을 생각하면 된다.
시보리는 ‘눌러 짠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다. 원형 금속판을 선반틀에 고정시켜 고속회전시키면서 금속 막대기로 눌러가며 모양을 만든다. 도자기 빚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일종의 수제 금속 가공법이다. 조명갓, 밥그릇, 냉면사발 등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
정밀도 많이 보이는 간판이다. 조각기나 선반 등을 이용해 금속을 깎는 작업을 주로 하는 곳이다. 주물은 각종 금속을 녹인 뒤 거푸집에 부어 제품을 만드는 곳이다. 상패, 붕어빵·와플빵틀 등을 생산한다. 이정국 기자
도움말·사진 소동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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