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에 관한 박물관’ 설립자 올린카 비슈티카(오른쪽). 사진 이정국 기자
‘실연에 관한 박물관’(실연 박물관)은 2006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처음 열렸다. 설립자인 올린카 비슈티카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실제 연인 사이였다. 실연 박물관을 기획할 당시 이들은 교제 뒤 헤어진 상태였다. 이별을 아픈 기억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자는 데 의견을 같이한 이들은 자그레브의 작은 컨테이너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두 설립자는 4일 기자들을 만나 “이별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이별과 관련된 물건들을 태운다. 잊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굳이 태워서 없앨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 둘은 연인관계는 끝났지만, 실연 박물관의 공동 설립자로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별을 소재로 한 독특한 콘셉트 덕분에 실연 박물관은 지난 10여년간 파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타이베이 등 3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를 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2011년에는 유럽 뮤지엄 포럼이 가장 혁신적인 박물관에 주는 ‘올해의 유럽 뮤지엄 케네스 허드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첫 전시를 위해 아라리오뮤지엄 쪽은 지난 2월부터 한 달간, 실연에 대한 다양한 사연과 물품을 기증받았다. 총 100여점의 기증품은 ‘그 사람을 위한 작은 박물관’, ‘사랑의 위성’, ‘그대여, 안녕’, ‘가지 않은 길’이라는 주제로 분류돼 4개 층에 나뉘어 전시 중이다. ‘사랑의 위성’에선 남녀간의 이별 이야기가 담긴 물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대여, 안녕’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반려견 등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별의 대상이 꼭 ‘타자’일 이유는 없다. ‘가지 않은 길’ 전시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증자가 남긴 예전의 큰 청바지처럼 과거의 내 모습을 상징하는 물품이 전시돼 있다. 과거의 나와 이별한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 형식도 독특하다. 다른 전시회처럼 전시품 옆에 설명을 써놓지 않았다. 입장할 때 리디북스의 전자책인 ‘페이퍼’를 나눠주는데 이것을 전시장 안에서 들고 다니면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보이며,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경우엔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도 주었다.
크로아티아에선 연인들이 이 전시장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별을 간접체험하면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그루비시치는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시회에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라며 치유를 받고, 연인들은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동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를 마친 후 기증품과 사연은 크로아티아 상설박물관에 영구 소장될 예정이다. 전시회는 오는 9월25일까지 열린다. 입장료 성인 1만원, 청소년(14~19살) 6000원.
제주/이정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