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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만 미워해?

등록 2016-07-07 11:34수정 2016-07-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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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본능 ‘화’의 억울한 사연…“참지 말고 제대로 내세요”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직장 상사의 화. 그럴 때마다 참는 당신. 참는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제대로 화내는 법을 찾아야 할 때다. 모델 이정국 기자(왼쪽), 홍윤기씨(오른쪽·상명대 사진영상미디어학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직장 상사의 화. 그럴 때마다 참는 당신. 참는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제대로 화내는 법을 찾아야 할 때다. 모델 이정국 기자(왼쪽), 홍윤기씨(오른쪽·상명대 사진영상미디어학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런 말 하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좀 그런데, 솔직히 억울해. 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 가운데 하난데 말야, 계속 이런 대접을 받으며 언제까지 참고 살아야 해? 내가 화병이 날 지경이라니까.

안녕? 나는 ‘화’야. 반가워.

그럴 줄 알았어. 반갑지 않다고? 모두들 나를 싫어할 거라는 건 알고 있어. 여러 미술 작품을 보여준 뒤 화를 느끼는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작품을 고른다고 해. 그만큼 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그런데 말이야, 화가 꼭 부정적 감정일까? 뭔 소리냐고? 화내지 말고, 들어봐.

화가 만들어지는 곳은 인간의 뇌야. 뇌 가운데서도 안쪽 깊숙이 위치한 편도체라는 곳에서 만들어져.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지. 그런데 이 편도체는 이성적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보다 먼저 발달했다고 해. 즉, 화는 인간의 이성보다 먼저 탄생한 본능이야.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 맞잖아.

불필요한 본능은 없어. 사실 화는 약자들이 더 많이 느껴. 호랑이나 사자가 짖는다는 소리 들어봤어? 짖을 필요가 없지. 위협 요소가 별로 없으니까. 자주 짖는 건 개들이야. 겁에 질린 걸 감추고, 소리라도 크게 질러 자기를 과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거든. 그런데 인간 세계에선 화를 내고 싶을 때 내는 게 강자만의 특권이 됐지. 특히 동양권에선 나이, 권력 등의 서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에, 사회모순에 저항하는 것을 막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의 통제가 더해지면서 약자는 본능인 화를 억압당한 거야. 더 근본적으로는 종교의 영향으로 화를 ‘나쁜 것’으로 여기게 된 탓도 있고.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다들 알겠지만, 화를 억누르면 병이 돼. ‘화병’은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에만 있는 정신질환이야. ‘울화병’의 줄임말인데, 울화는 ‘답답한 화’, ‘억울한 화’라는 뜻이야. 울화는 지속되면 분노로 변해. 그 분노는 언젠간 폭발하는데, 그 대상은 항상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야. 약자에 대한 혐오가 되는 거지. 최근 일어나는 여러 혐오 범죄를 생각해봐. 자신을 화나게 만든 곳과 화를 발산하는 곳이 다른, 전형적인 예야. ‘영에서 매 맞고 집에 와서 계집 친다’는 속담이 있어. 영은 요즘의 군대라고 보면 돼. 군대에서 매를 맞았는데 집에 와서 아내를 때리는 이 비이성적 행위는 한국에서 화가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이제 제대로 화를 내는 것에 주목해야 해. 화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풀어야 해. 듀크대학교 행동의학연구소장 레드퍼드 윌리엄스는 이런 말을 했어. “인간에게 화가 유용하지 않다면, 화라는 감정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화를 죄악시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라는 거야.

이제 나를 너무 싫어하지 말고, 친숙하게 생각해줘. 화는 누르고 없애는 게, 아니라 ‘제대로’ 내는 거야.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움말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교수.참고자료 <화내는 당신에게>(위즈덤하우스), <화>(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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