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소현씨가 수집해온 ‘로얄코펜하겐’ 그릇을 정리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15일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서울 신혼부부들이 흔하게 살림을 시작하는 평범한 전셋집이었지만, 들어서자 다른 집과는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보통 부엌에 있어야 할 그릇이 거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던 것이다. 첫눈에 봐도 보통 그릇과는 달라 보였다.
그릇이 훌륭한 인테리어로
“로얄코펜하겐이라는 덴마크산 그릇이에요. 240여년 전 왕실에 납품할 목적으로 세워진 도자기 회사죠. 지금은 대중들도 쓰고 있지만, 다른 그릇과는 품격이 달라요.”
결혼 2년차 주부 박소현(33)씨가 말했다. 그는 그릇을 뒤집어 보이며 “여기 보세요. 사인이 있죠. 그릇 무늬를 전부 사람이 직접 그려요. 그래서 사인을 남겨놓는 거죠. 사람이 하니까 그릇마다 조금씩 선의 굵기 등이 달라요. 그게 더 매력적이에요.”
그가 그릇에 관심을 가진 것은 결혼 때 혼수 준비를 하면서부터다. 이런저런 제품들을 보다가 로얄코펜하겐을 알게 됐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풀세트’를 구매하진 못했다. 그 뒤로 조금씩 조금씩 모아오며 20여가지의 그릇을 모았다.
20여가지라고 해도, 작은 그릇 하나에 최소 10만원 이상씩 하는 고가품이기 때문에 꽤 비용을 지출했다. 무늬와 그릇 등급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한정판이 나오면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제품들은 몇년 지나면 오히려 가격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는 설탕을 담는 조막만한 그릇을 하나 들며 “제일 비싼 ‘블루 풀 레이스’ 제품이에요. 이거 하나만 40만원 정도 해요”라고 했다. 모양을 보니 범상치 않았다.
박씨는 그릇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실에 ‘전시’를 하기 시작했다. 전세인 탓에 하고 싶은 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어 한쪽 벽만 파란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는데, 파란색 벽과 푸른색 그릇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그릇 먼저 봐요. 단순히 인테리어 용도로만 쓰는 것도 아니에요. 손님 찾아오면 꺼내서 차를 마시기도 하죠. 분위기가 확 살아요.” 그가 차를 따르며 말했다.
비싼 그릇도 희귀 시디도
그냥 모아두기만 하면 ‘짐’
선반 등 활용해 전시하면
집안 분위기 살리는 ‘꽃’
한쪽 벽을 시디 케이스로 채운 ‘통의동 단팥’. 이정국 기자
수집과 인테리어를 동시에
요즘 ‘인테리어족’ 사이에선 박씨처럼 수집(collection)과 인테리어(interior)를 동시에 하는 ‘컬렉테리어’가 유행이다. 인테리어를 하려면 큰돈이 든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컬렉테리어는 본인이 모아온 수집품을 활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안 들거나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 취미와 인테리어가 만난 셈이다. 과거 ‘아버지들의 취미’였던 난이나 수석 수집 등도 컬렉테리어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최근엔 수집가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수집의 범위도 넓어지면서 이를 인테리어에 응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꼭 고가의 수집품을 활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촌’으로 부르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통의동 단팥’은 저렴한 비용으로 컬렉테리어를 활용한 예다. 서촌 팥빙수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보면 이곳 인테리어도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한쪽 벽을 시디(CD) 케이스로 채운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대표 이정민(40)씨는 2년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한쪽 벽을 비워달라고 했고, 그곳을 그동안 모아온 시디 케이스로 채웠다. 하나에 4000원 정도 하는 ‘시디 액자’를 산 뒤 시디를 끼워 걸어 놓으니 그럴듯한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그곳에 제대로 된 그림을 걸었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모두 48장의 시디가 걸려 있는데 대부분 그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 ‘팻 메시니’ 앨범이다. “원래 팻 메시니의 팬이기도 했지만, 앨범 디자인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하나하나가 다 예술품이잖아요.” 실제 팻 메시니의 전성기 시절 앨범이 나온 독일 재즈 레이블 이시엠(ECM)의 앨범 표지는 별도의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인스타그램의 한 이용자는 이곳을 다녀간 뒤 “취향 저격”이라는 평을 남겼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시각적인 인테리어 효과 이상의 ‘공감 인테리어’로 작용하는 셈이다.
선반을 이용해 ‘건프라’를 전시한 예. 양선희 제공
소품 잘 활용하면 효과 두배
취미로 모아온 수집품을 인테리어에 활용한다고 해서, 수집품만 덩그러니 놓아둔다면 제대로 멋을 내기 힘들다. 수집품을 빛나게 해줄 각종 소품을 잘 활용해야, 수집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다.
우선 선반을 잘 이용하는 게 좋다. 직장인 양선희(37)씨는 10여년 전부터 ‘건프라’라 불리는 건담 프라모델을 모으고 있다. 하나둘씩 모아오다 개수가 많아지자 그는 최근 선반을 하나 구입해 벽에 달았다. 방과 어울리도록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있다가 선반을 달아 올려놓으니 그럴듯하더라고요”라며 그는 만족해했다.
조명도 중요하다. 사실 조명은 단순히 빛을 내는 용도가 아니라, 인테리어의 중심이다. 수집품을 비춰줄 조명 하나만 잘 설치해도 분위기가 확 바뀐다. 특히 별도의 공사 없이 혼자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 인기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소니가 발표한 소니의 ‘엘이디(LED)전구 스피커’와 ‘글라스 사운드 스피커’가 대표적이다. 아직 국내 판매 전인데도 소비자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많이 구입한다. 전구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합쳐진 제품으로, 수집품 근처에 설치해 빛을 비춰주면서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 수도 있다. 방이 갤러리가 되는 셈이다. 이 밖에 이케아의 ‘리가드 조명’도 손쉽게 설치가 가능하면서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까지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소니 ‘글래스 사운드 스피커’. 소니코리아 제공
안톤 허크비스트 ‘이케아 코리아’ 인테리어 디자인 매니저는 “작은 소품으로 집 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조명과 거울”이라며 “적절한 곳에 조명을 설치하고 그날그날에 맞춰 조명을 켜두거나 꺼놓으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거울의 반사 효과를 이용하면 멋진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 밖에도 수집품과 어울리도록 아기자기하게 나온 소품도 많다. 예전 브라운관 텔레비전 모양의 액자나, 즉석카메라 모양의 휴지걸이 등은 수집품 근처에 두면서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거울을 활용하면 수집품의 수가 많아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제품은 ‘콜리아’ 거울. 이케아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