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10돌 기념호] ESC 초기에 등판한 요리사 박찬일과 소설가 김중혁 10돌 기념 인터뷰
박찬일의 식당 ’광화문국밥’ 앞에 선 김중혁(왼쪽)과 박찬일 박미향 기자
음식 전문잡지 기자로 한솥밥
ESC 창간 때 다시 만나
음식 기자·필자로 맹활약 박, “시장규모 커진 건 긍정적
‘인기 셰프 추종 놀이’도 많아”
김, “한 나라 요식업계 수준은
‘식당 매니저 대우’ 보면 드러나” 그러나 2003년 ‘사수’와 ‘부사수’로 만난 두 사람 관계를 리영희 선생과 <한겨레> 창간세대 기자라든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의 그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카키색 헌팅캡을 쓴 박 요리사가 불판의 낙지를 헤집으며 “<펭귄뉴스>가 말도 안 되게 많이 팔렸어. 태작이 반인데 또 좋은 작품이 반이거든”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눙치면, 김 작가는 특유의 졸린 눈으로 “사실 박 선배 요리는 다 내가 해준 거지”라고 받아친다. 둘은, 좋은 의미의, 친구다. ESC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익어갔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2007년 5월17일 첫호를 낸 <한겨레>의 라이프스타일 섹션 ESC에서 다시 만난다. 김 작가는 <베스트레스토랑>을 퇴사한 뒤 여행잡지를 거쳐 2006년말 ESC 창간팀에 합류했다. 그동안 쌓은 요리계 인맥과 지식을 ESC에서 살렸다. 한국 잡지계에서 ‘제2의 한창기(<뿌리깊은 나무> 등을 창간한 출판언론인)’로 불리던 고경태 출판국장이 당시 팀장으로 창간 준비를 총책임졌다. 2007년 5월31일치 ESC에 실린 김 작가의 ‘칼의 노래’ 기사가 많이 회자됐다. 김 작가는 <베스트레스토랑> 퇴사 뒤 ESC에 합류하기 전인 2006년 소설집 <펭귄뉴스>를 펴냈고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다. 요리기자처럼 취재하고 작가처럼 썼다.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군인이 칼을 쥐면 세상이 험악해지지만 요리사가 칼을 쥐면 세상이 향기로워진다. 무사의 칼이 불을 뿜으면 여럿 죽지만 요리사 칼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면 맛있는 요리 한 접시가 탄생한다”는 문장은 2007년 다른 종합일간지 음식면이나 음식전문지 어디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수준의 문장이었다. 입길에 올랐다. 이연복, 안효주, 어윤권, 윤정진 요리사 등이 각자 요리와 칼에 얽힌 사연을 말하는 기획기사였다. “안효주 요리사가 당시 언론 인터뷰 거의 안 할 때였어요. 제가 그때 진짜 여러 번 연락해서 성사된 거예요. 이연복 요리사 등등이 다양한 방식의 칼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기사 제목이 ‘칼의 노래’였죠.” 밤 11시 김 작가가 추가로 온 조개탕 국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박 요리사는 “칼이고 나발이고 2007년에 요리사의 칼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안 가질 때야, ESC라서 가능했지”라고 말했다. “인정!” 김 작가가 답한다. 뜨끈한 국물 위로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박 요리사와 김 작가 모두 당시 ESC 요리면이 파격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박 요리사는 “충격적인 아이템이 많았지. 사실 초짜 요리사의 연재를 자그마치 40주 동안 오래 연재했고 게다가 한 번 연재할 때 신문 한 면을 다 털어주는 건 파격적인 구성이었어”라고 말했다. 김 작가도 동의했다. “지난 십년간 음식 관련해 가장 큰 변화가 티브이 먹방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ESC는 10년 전에 벌써 음식에 대해 치열한 담론을 낸 거죠. 유행을 5년 앞서갔다고 봐요.” 김 작가는 ESC에서 요리면은 물론 자동차, 남성 패션 등의 여러 분야를 담당했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쓴 문학가에게 지나치게 많은 노동량이었지만, 김 작가는 맡은 기사를 다 썼다. 그리고 ESC 창간 넉 달 뒤 퇴사해 다시 전업작가의 길로 돌아갔다. 박 요리사는 2008년부터 약 1년간 이탈리아 요리학교 경험을 담은 에세이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를 연재했다. 박 요리사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접한 누군가는 “박찬일은 배경을 항구와 이탈리아로 바꾼 ‘이문구’”라고 평했다. 가령 이런 문장.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밑의 요리학교에는 다국적 유엔군처럼 요리사들이 바글거렸다. 북유럽과 독일, 이탈리아에다 아시아 각국이 모였다. 아메리카 대륙은 캐나다부터 남쪽의 브라질까지 빠짐없이 여권 구경을 했다. 혈기 방장한 젊은 녀석들을 두 달간 꼼짝없이 기숙사에 처박아 두었으니 대소동의 연속이었다. … 녀석들 중에 1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테러분자로 오인받아 입국이 보류되어 뒤늦게 합류한 레바논 녀석은 험악한 생김새와 달리 심성이 착했다. 수업시간이면 조용히 사라져 모자란 잠을 청하느라 아예 별명이 ‘어디 있니’(where are you?)였던 걸 빼면 말이다.” 이런 능청스런 문장의 맛은 박 요리사가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나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 유학 및 시칠리아 요리 실습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잡지 기자 생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박 요리사가 포복절도할 캐릭터로 유명한 이탈리아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의 애독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유머 감각은 디엔에이(DNA)로 추정된다. 글 쓰는 요리사 혹은 요리하는 글쟁이 박 요리사의 이 연재물은 2009년 9월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김중혁(왼쪽), 박찬일.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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