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후면 생일이다. 정확히 마흔 살의 생일. 사실 나이에 대해 구태여 신경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까무룩 잠들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깨어버린 어제 새벽, 모르는 이에게서 온 한통의 메일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나의 마흔 됨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이미 결혼해 아이도 낳고 집도 샀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는 내 또래 여자의 고백. 이러다 결국 혼자 늙어갈까봐 무서워 누구라도 만나야 할 것 같다는 넋두리였다. 잠결에 눈을 반밖에 못 뜨고 읽다가, 이내 또렷이 각성이 되었다. 10년 전 과거의 내가 보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낯선 이의 편지 속에 있었으니까.
서른 살의 난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었고, 나름 착한 딸이었지만 내 스스로 규정하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하는데 나만 뒤처진’, ‘어쩌면 나만 아이를 못 가질지 모를’ 같은 문구들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이었다. 이대로 늙어가면 아무도 나를 보살펴주지 않을 거라는 공포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겠다는 섣부른 약속을 감행할 만큼 그때의 나는 거의 불안에 목 졸리기 직전이었다. 더 이상 목 졸리고 싶지 않아 선택한 결혼이 내 목을 제대로 조르고 말았지만.
함께 살기로 약속한다는 건,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는 건 인생의 시스템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 중요한 결정에 너무 많은 사회적 기대가 개입되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손쉽게 가려진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 ‘애를 낳고 길러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와 같은 이야기들 앞에서 ‘미혼’은 ‘미성숙’과 동의어가 되어버리니까. 한국 사회는 개인의 행복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너무 많은 사회적 당위가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여성은 더 이른 나이에, 더 강력한 압박을 경험한다. 서른 살의 남자는 이제 시작하는 나이로 여겨지지만, 서른 살의 여자는 그렇지 않다. 같은 일을 해도 남자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데,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것’이라거나,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장땡’이라는 ‘아무말 대잔치’ 앞에서 꿋꿋하기란 쉽지 않다. 자존감이 한참 낮아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선택한 사람이 자신에게 적절한 상대일 리 만무하고, 그런 이와 보내는 시간이 천국이 될 리도 없다. 불편한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 혼자 떠나는 여행보다 나을 수 없다.
조바심과 두려움을 고백해온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인생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라고, 정작 중요한 건 내 삶을 내 스스로 어떻게 규정할지 정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불안에 잠식되었던 서른 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십 년 뒤, 너는 어리석던 시절에 했던 선택을 되돌려 비로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홀로 살아가는 마흔 살이 될 거라고. 가끔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새벽을 맞을 것이고, 돌연 아프더라도 혼자 낑낑대며 운전해 응급실도 가고 입원도 해야 하겠지만 그리 대단히 힘들거나 서러운 일은 아닐 거라고. 결혼이 아니라, 다만 너의 통장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곽정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