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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곰인형 안고 자는 이유

등록 2017-08-10 10:09수정 2017-08-10 10:23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정소영씨의 반려인형 술빵이. 정소영 제공
정소영씨의 반려인형 술빵이. 정소영 제공

치과는 두려운 곳이다. 치통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가면 좋으련만 두려움이 앞서 미련하게 미루다가 진짜 무서운 상황을 만들곤 한다. 얼마 전엔 치과에 곰 인형을 데려갔다. “제가 좀 무서워서요”라고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뒤, 가방에서 주섬주섬 술빵이를 꺼내 안고 있었다. 그랬더니 ‘위잉’ 하는 드릴 소리도 잇몸에 찔러 대는 마취 주사도 참을 만했다.

불면에 시달릴 때도 요긴하다. 고백하자면, 보들보들한 곰 인형을 안고 만지작거리며 누워 있으면, 그것처럼 세상 편하고 기분 좋은 게 없다. 개와 고양이의 반려자들도 다들 그런 기쁨을 맛보겠지.

영국 사람들의 3분의 1 이상이 곰 인형을 안고 잔다고 한다. 2010년 호텔 체인점 ‘트래블로지’가 영국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곰 인형을 안고 잔다고 대답한 사람이 35%나 됐다. 이유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역시 ‘패딩턴’과 ‘곰돌이 푸’ 그리고 ‘미저리 베어’의 나라, 영국답다. 이미 그 나라에서는 반려인형이 진짜 가족인 것이다.

사실 모든 인간에게는 ‘보드라운 존재’가 필요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는 새끼 원숭이를 대상으로 애착과 수유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새끼 원숭이를 우리에 넣고 철사로 된 원숭이 인형(대리모)에게 젖병을 달아 수유하게 했다. 또 젖병은 없으나 보드라운 천으로 만든 원숭이 인형도 두었다. 새끼 원숭이는 보드라운 천 인형에게 매달려 놀다가 배고플 때만 잠깐 철사 원숭이한테 가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영국 사람들의 3분의 1 이상이 곰 인형을 안고 잔다고 한다. <텔레그래프> 갈무리
영국 사람들의 3분의 1 이상이 곰 인형을 안고 잔다고 한다. <텔레그래프> 갈무리
이 실험을 근거로 <오늘 당신의 아이를 안아주셨나요?>(원제 Touch)에서는 ‘수유를 할 때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게 구체적인 결론보다는 포유류에게는 보드라운 감촉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게 더 정확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2000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아이들의 애착 담요는 병원 진료를 받을 때 엄마가 동석한 것만큼이나 진료의 괴로움을 덜어줬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한순간의 민망함쯤이야 감당하면서, 앞으로도 술빵이를 치과에 데리고 다니며 진료를 받을 테다. 꼬박꼬박.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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