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국내 대형 종합병원의 조리사·영양사들이 서울 신교동 푸드앤컬쳐아카데미에서 할랄음식 조리 교육을 받고 있다. 푸드앤컬쳐아카데미 제공
현재 할랄푸드 보급의 첨병은 역설적이게도 병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중동지역 환자는 7200명에 이른다. 2009년 614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늘었다. 이들 중동지역 환자 1명당 진료비는 1194만원으로 외국인 환자 가운데 1위다. 병원 쪽에선 큰 수익원인 셈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할랄음식만을 고집하는 무슬림에게 병원식은 높은 벽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각 병원의 영양사와 조리장들에게 할랄 병원식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 대형 병원 15곳에서 할랄푸드 교육을 진행한 김수진(62) 푸드앤컬쳐아카데미 원장을 21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사무실에서 만나 할랄푸드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어떻게 할랄푸드 교육을 하게 됐나.
“현재 무슬림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삼성의료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음식도 그 노력의 하나다. 한국 사람들도 ‘병원밥 먹다가 병난다’고 할 정도로 병원식 품질에 대한 지적이 많지 않았나. 아무리 의료 서비스가 좋아도 음식에 실망한 중동 환자들이 좋은 인상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점을 알아서 2015년 말에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에 의뢰해 할랄푸드 레시피 책을 제작했다. 이를 토대로 진행하는 교육업체로 선정돼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재 15개 병원의 병원식 관계자가 교육을 받았다.”
-처음 레시피 책을 토대로 음식을 만들고 나서 반응이 어땠나.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처음 시식회를 진행했는데, 다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환자들이 100% 자신의 고향과 같은 맛이라고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외국에서 한식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다. 뉴욕 맨해튼에서 김치찌개 먹으면 엄청 달게 느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됐다’고 다들 하니까 먹는 거다. 어느 정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이 될 수밖에 없다.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디저트를 즐겨 먹는데, 그 나라 레시피대로 만들면 너무 달아서 한국 사람은 먹지 못한다.”
-원래 한식 연구가다. 할랄푸드가 생소하진 않았나.(김 원장은 영화 <식객>, <음란서생>, <왕의 남자> 등에서 음식 감독을 한, 30년 경력의 한식 연구가다)
김수진 푸드앤컬쳐아카데미 원장.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물론이다. 처음엔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식재료 이해도 부족했다. 서울 이태원의 할랄음식점을 다니면서 조언을 듣고, 조리장들을 인터뷰했다. 꾸준히 공부하다보니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힌 거 같다. 무조건 보고 배우는 방법밖에 더 있나.(웃음) 자꾸 연구하다보니 한식과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공통점인가.
“일단 할랄푸드 자체가 신선한 채소와 곡물을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튀기는 조리법보다 찌거나 삶거나 굽는 조리법이 많다.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느끼하지 않다.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나. 할랄푸드도 이에 못지않은 건강식이다. 최근 양념을 최소화하고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한식 트렌드도 할랄푸드와 닿아 있다. 할랄푸드는 양념을 최소화한 음식이다.”
-할랄푸드의 매력이 뭐라고 보나.
“종교를 떠나서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가깝다고 본다. 최대한 오염물질과 멀리해야 하는 원칙들이 안전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나도 천주교 신자지만 음식 자체에 매력이 있다.”(웃음)
-한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 한식이 이슬람 사람들에게도 잘 맞는다고 보나.
“물론이다. 닭을 즐겨 먹고, 채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잡채, 비빔밥, 삼계탕을 굉장히 좋아한다. 불고기의 경우도 고기 핏물을 잘 빼고 채소를 많이 넣어주면 놀라워한다. 너무 맛있다는 거다. 여기에 우리가 먹는 쌀밥에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을 조금 넣어주면 자기네 나라 음식과 비슷하다며 잘 먹는다.”
-일반인들은 재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대형 병원들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이태원 외국인 마트에서 구한다. 이슬람 거리 주변에 오래된 대형 마트들이 몰려 있다. 이곳에 가면 크게 어렵지 않게 재료를 구할 수 있다. 보급이 늘어나면 앞으로 구하기는 더 쉬워질 것이다.”
-음식 난이도는 어떤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처음엔 생소하니까 어렵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쇠고기의 핏물을 완전히 제거한다든가 양념에 미리 재우는 등 재료 밑손질에 약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정작 요리 방법은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할랄푸드인 후무스는 불린 병아리콩을 삶아서 올리브유, 소금 넣고 취향에 따라 레몬주스 등을 섞어 갈아주면 된다. 너무 쉽다. 물론 ‘어머니 손맛’을 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식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할랄푸드도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은 서로 통한다.”
-앞으로 계획은.
“계속해서 할랄푸드를 공부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할랄푸드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 아직 한국에는 없다. 또 기회가 되면 이슬람 지역에 한식을 소개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할랄(Halal) 푸드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의 ‘할랄’과 음식을 뜻하는 ‘푸드’의 합성어. 이슬람 율법에 의해 허용된 식품과 음료, 식재료 등을 뜻함. 최근에는 대량 생산·유통되는 식품에 비해 신선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음.
김수진 원장 추천 할랄푸드 3선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는 할랄푸드. 하지만 오히려 양식, 일식, 중식보다 조리하기가 간편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할랄 인증을 받은 고기를 구하지 못한다 해도, 채소와 생선만을 이용한 요리는 간단히 집에서 할 수 있다. 푸드앤컬쳐아카데미 김수진 원장이 추천하는 ‘할랄푸드 3선’을 소개한다.
렌틸콩 수프
재료: 렌틸콩 500g, 식용유 약간, 다진 양파 300g, 커민가루 약간, 다진 마늘과 소금, 백후추 적당량.
만드는 방법
1 끓는 물에 렌틸콩, 양파, 마늘을 넣고 30분 정도 끓인다.
2 1을 믹서에 간다.
3 2에 식용유, 커민가루, 소금을 적당량 넣고, 5분 더 끓여낸다. 걸쭉한 느낌을 좋아하면 간 렌틸콩을 좀 더 넣어도 된다. 취향에 따라 토르티야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타불레샐러드
재료: 양파 1/4개, 토마토 1/4개, 생파슬리, 쿠스쿠스(듀럼밀을 으깬 밀가루를 쪄서 만든 식품), 레몬주스, 올리브오일, 소금 적당량.
만드는 방법
1 토마토와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생파슬리는 잎을 뜯어 다진다.
3 레몬주스와 올리브오일, 소금으로 드레싱을 만든다. 썰어놓은 채소와 삶은 쿠스쿠스에 곁들여준다.
연어구이
재료: 스테이크용 연어 1조각, 코코넛밀크, 커리가루, 양파가루, 마늘가루 적당량과 마요네즈, 후추, 피클 약간.
만드는 방법
1 코코넛밀크에 커리가루, 양파가루, 마늘가루를 넣고 섞는다. 향신료는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2 연어 위에 1을 넉넉하게 뿌려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약 40분 동안 구워준다.
3 마요네즈, 후추, 피클을 섞어 디핑소스(담금양념)를 만든다.
4 밥과 함께 곁들여 제공한다.
할랄 푸드를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할랄 식재료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직접 도축을 할 수는 없는 노릇. 할랄 인증을 받은 재료를 사는 게 가장 간편한다.
가장 핵심은 육류다. 사실상 채소는 거의 대부분이 할랄 식재료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다니는 마트에서 구입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일정한 방식과 절차에 의해 도축되는 육류의 경우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이슬람 사원이 있는 서울 이태원 우사단길에 있는 ‘포린 푸드마트’(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3), ‘내셔널푸드마트’(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39)는 할랄 식재료를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매장 안에 다양한 할랄 인증 제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육점도 별도로 있어 할랄 식재료를 사기에 용이하다. 당연히 이슬람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는 팔지 않는다. 쇠고기는 100g당 1500~1700원, 양고기는 2000원대로 비싸진 않다. 닭은 한마리에 5000원 정도다. 미리 허브에 양념을 한 닭고기도 판다. 관광차 둘러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부담 없이 구경해도 된다.
우산단길에 있는 할랄 전문 정육점인 ‘알바라카’(서울 용산구 우사단로 10가길 2)로 할랄 푸드 마니아라면 들러볼 만하다. 국내 특급 호텔에 고기를 납품할 정도로 품질을 인증받은 곳이다. 특히 질 좋은 고기를 냉장 상태로 유통·판매해 신선한 양고기를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