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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초가을 섬 바람이 쉬어가라 손짓하네

등록 2017-08-30 19:36수정 2017-08-30 19:52

[ESC] 커버스토리

눈부신 모래밭·울창한 동백나무숲 비진도
연도엔 절벽마다 해적·보물 동굴 이야기
비진도 외항마을에서 한 탐방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비진도 외항마을에서 한 탐방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하늘이 나날이 푸르고 깊어진다. 남해바다 점점이 뜬 섬들의 배경화면도 새파란 하늘이다. 초가을은 섬 나들이 하기 좋은 때다. 높아서 푸르고 깊어서 더 푸른, 가을 하늘과 청정 바다를 한가슴에 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휴가객 발길이 잦아들어 분위기도 한적하다. 가을맞이 하기 좋은 남해안의 섬 두 곳을 다녀왔다. 경남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비진도와 전남 여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연도다. 모두 경관이 빼어나고, 울창한 숲으로 뻗은 해안 탐방로를 갖춘 섬이다.

보배로운 ‘미인섬’ 통영 비진도

비진도는 견줄 비(比), 보배 진(珍) 자를 쓰는 섬이다. 아름다운 경관이 보배에 견줄 만하다는 뜻이다. 안섬과 바깥섬으로 이뤄졌는데, 두 섬을 가늘고 긴 모래밭이 이어준다. 아령 모습이라고도 하고 땅콩 모양이라고도 한다. 그보다는 ‘개미허리’나 여성의 ‘가슴 가리개’를 닮았다는 이들이 많다. 그래선지 통영 사람들 중엔 비진도를 ‘미인도’라 부르는 이가 많다.

비진도를 보배롭게 해주는 대표적인 경관이 바깥섬 선유봉(312m) 자락 ‘미인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긴 모래밭과 외항 일대 모습이다. 비진도가 왜 ‘미인도’라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 비진도의 또다른 매력은 울창하고 아늑한 숲길과 숲길 끝에서 만나는 바위 해안 경치에서 드러난다. 이들 볼거리를 한걸음에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바깥섬의 탐방로 ‘비진도 산호길’을 걷는 것이다.

외항 선착장 부근 탐방안내소 뒤쪽에 선유봉 탐방로 입구가 있다. 들머리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1.7㎞)과 완만한 길(3.2㎞)을 선택할 수 있다. 왼쪽이 미인도전망대를 거쳐 곧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짧고 가파른 길이고, 오른쪽은 숲길과 해안절벽길을 거쳐 오르는 다소 완만한 길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약 5㎞ 길이의 순환 탐방로다. 쉬엄쉬엄 3시간이면 한바퀴 돌 수 있다. 오른쪽 완만한 길로 정상에 올라 미인도전망대를 거쳐 내려오는 게 다소 편하다.

비진도 바깥섬 동백나무숲길.
비진도 바깥섬 동백나무숲길.
스님 한 분이 머문다는 작은 암자 비진암을 거쳐 해안 절벽과 만나게 되는 갈치바위(슬핑이바위)까지의 숲길이 매우 아름답다. 아름드리 동백나무숲과 후박나무숲이 햇살이 스며들지 못할 만큼 우거진 어두컴컴한 산길이다. 숲길 내내 파도 소리와 매미 소리가 요란스러운 합창을 들려준다.

갈치바위는 섬 서쪽 끝 절벽 위의 바위 이름이다. 안내판엔 옛날 태풍이 몰아칠 때 파도가 절벽 위까지 넘나들며 바위자락에 갈치를 걸쳐 놓곤 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주변 바위 절벽에 점점이 흩어져 앉고 선 흑염소들이 위태로워 보이는데, 몇 마리는 절벽에 기대 잠을 자는 모습이다. 바위해안 풍광이 가장 멋지게 다가오는 곳은 노루여(노루여울)전망대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밑으로 짙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곳이다. 옛날엔 절벽을 따라 이동하던 노루가 이곳에서 추락하는 일이 잦았다. 떨어진 노루를 찾아 일부러 배 타고 절벽 밑 해안을 뒤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1㎞쯤은 가파른 길이다. 팔각정 있는 곳이 선유봉 꼭대기다. 비구름이 몰려온 탓에, 탁 트여 시원하다는 남해 바깥바다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봉우리 하나 더 넘고 가파른 내리막길 따라, 흔들리지 않는 ‘흔들바위’ 지나 내려서면 미인도전망대다. 정상에서 산길로 700m 지점이다.

“와, 보인다. 진짜 개미허리 같네.” 비구름이 잠시 물러나면서 햇살 한 줄기가 긴 모래밭과 외항 주변을 비추자, 전망대에 있던 탐방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안섬과 이어진 사구의 왼쪽은 눈부신 모래밭, 오른쪽은 몽돌밭이다. 양쪽 해안을 향해 밀려드는 파도의 흰 선들이 그림같다. 안섬 뒤쪽의 섬무리는 구름 속이다. 맑은 날이면 좌에서 우로, 미륵도·한산도·용초도·추봉도·병대도·매물도·소매물도 등이 두루 한눈에 들어온다.

비진도 바깥섬 ‘미인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래해변과 안섬.
비진도 바깥섬 ‘미인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래해변과 안섬.
더 내려가 만나는 망부석전망대에서 미인도전망대 쪽을 올려다보면, 전망대를 떠받친 바위의 일부분인 망부석이 보인다. 사람의 옆얼굴 모습이다. 여기서 1㎞쯤 내려가면 출발했던 외항 선착장에 이른다.

탐방안내소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구름은 사라지고 새파란 하늘이 맑게 씻긴 맨얼굴을 드러냈다. 기다렸던 초가을 하늘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모래해안 건너 외항마을을 거쳐 내항마을까지 걸어가볼 만하다. 내항엔 천연기념물인 팔손이나무 자생지가 있다. 외항~내항은 걸어서 20~30분 거리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비진도행 배(매물도행 배가 거쳐간다)가 하루 3회 운항(7시, 11시, 14시30분, 성수기엔 수시 운항)한다. 40분 소요. 비진도의 내항과 외항 두 곳에 차례로 배를 댄다. 외항에서 내려 모래해변과 선유봉을 탐방한 뒤 다시 외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는 이들이 많지만, 내항에서 내려 외항마을과 모래해변을 둘러보고 선유봉에 오르는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외항마을·내항마을에 민박·펜션과 매점이 있다.

등대 주변 해안경치 장관, 여수 연도

연도는 솔개(소리개) 연(鳶) 자를 쓴다. 섬 지형 또는 산세가 솔개를 닮았다 해서 소리개 섬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섬 주민이 ‘소리도’라 부른다. 절벽해안 탐방로인 ‘비렁길’로 이름난 금오도 남쪽, 금오도와 다리로 이어진 안도 밑에 자리한 섬이다. 신라시대 주변 섬으로 귀양 온 사람이 탈출해 이곳으로 숨어들어온 것이 주민 거주의 시작이라고 한다. 1970년대엔 주민이 2000여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6개 마을에서 300여명이 살고 있는 조용한 섬이다.

연도의 소리도등대.
연도의 소리도등대.
연도는 그동안 경치보다는 1995년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건’ 발생지로 유명했다. 이제 연도의 ‘기름 유출 사건’은 잊혀가고 소리도등대와 주변 바위해안 등 경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등대 주변 말고도 씨프린스호가 좌초했던 곳인 ‘독 건네’(돌 건너) 해안, 100년 가까이 된 당산숲 등 숨은 경관이 많지만 주변 금오도와 안도에 비해 덜 알려져 찾는 이는 매우 적다.

소리도등대는 1910년 국내에서 21번째로 세워진 등대다. 굵고 짧은 육각형의 등대 모습도 멋지지만, 소룡단·대룡단 등으로 불리는 돌출된 바위해안 경치가 더 아름답다. 대·소룡단의 본디 이름은 ‘큰용뎅이 끝터리’와 ‘작은용뎅이 끝터리’다. 연도항 북부마을 당산숲 쉼터에서 만난 김기종(80)씨는 “한자로 적어 대룡단·소룡단이 돼버렸는데, 이것도 소룡단과 대룡단이 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금 소룡단으로 불리는 곳이 ‘큰용뎅이 끝터리’란 말씀이다.

연도(소리도)의 쌍굴.
연도(소리도)의 쌍굴.
연도엔 해식동굴이 여러 곳 있다. 그러다 보니 옛날 해적 이야기나 보물을 숨겨놨다는 동굴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해온다. 소리도등대 밑 솔팽이굴(솔핑이굴)도 그중 하나인데, 주민들에게 이 동굴은 실제로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동굴 앞이 도다리떼가 몰리는 어장이었기 때문이다. 주민 손순남(73)씨는 “젊었을 적에 설 명절이 다가오면, 배 여러 척에 4~5명씩 나눠 타고 솔핑이굴 앞에서 도다리를 잡았다”고 했다. 한번 배 타고 나가면 일주일에서 보름씩 머물며 도다리를 잡았는데, 먹고 쉬고 잠자는 곳이 바로 솔팽이굴이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요. 저녁에 나가 고기를 잡고 날 새기 전에 굴로 돌아왔지. 굴이 깊어서 배 6~7척이 다 들어갔어.” 솔팽이굴은 배를 타고 다가가야 구경할 수 있다.

등대 옆 절벽의 쌍굴도 볼만한 바위 경관이다. 등대에서 현재의 소룡단으로 내려서는 길옆 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바위 절벽 밑으로 나란히 보이는, 물살에 뚫리다 만 모습의 두 굴이 쌍굴이다. 두 굴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바위도 이색적이다.

역포마을에서 만난 70대 주민은 “소리도 경치가 금오도나 안도에 비해 떨어질 게 없다”며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 관광객이 몰려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기존의 소리도등대 주변 소룡단 일대 탐방로(1.3㎞)에 이어 최근엔 소룡단에서 남부마을로 이어지는 3㎞ 길이의 숲길 탐방로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아직 이정표나 경관 안내판 시설은 미흡하다.)

연도(소리도) 당산숲.
연도(소리도) 당산숲.
올해 초엔 소리도등대 입구의 덕포마을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지원하는 ‘명품 섬마을’로 선정됐다. 올 하반기부터 명품 마을 사업이 시작되면 공단의 지원 아래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을 새단장하게 된다. 마을이 내세울 자랑거리를 뽑아내고, 집마다 깨끗한 숙박시설을 들이는 한편, 마을회관과 식당 등 기반시설도 갖춰나갈 예정이다.

연도행 여객선은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2회(연도행 6시20분, 14시30분, 여수행 8시, 16시30분) 운항한다. 1시간50분 소요. 배를 대는 곳은 연도항이 아니라 역포항이다. 연도항 주변과 역포마을에 민박집이 몇곳 있지만 식당은 없다. 식사를 하려면 민박집에 예약해야 한다.

Island

섬. 바다나 호수, 강 등의 물에 둘러싸여 있는 땅. 바다의 경우 만조 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땅을 말한다. 사람이 정착해 경제활동을 지속하느냐 여부로 유인도·무인도를 구분한다. 경작지만 있거나 등대지기만 근무하는 섬은 무인도로 분류한다.

통영 여수/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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