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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니들이 뽑기 맛을 알아?

등록 2017-10-11 22:38수정 2017-10-11 22:40

보통의 디저트
?그림 김보통
?그림 김보통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뽑기 할아버지가 있었다. 낡아빠진 파라솔을 펼치고 만든 노점에서 하교하는 꼬맹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분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비위생적이란 이유로 뽑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뽑기 만드는 걸 보는 것은 좋아했다. 사르르 녹아내린 설탕에 소다를 섞으면 요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 광경은 어린 나에겐 매혹적이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뽑기를 만들었다. 뽑기 국자는 제한된 개수만 있었기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만드는 것을 구경해야 했다. 뽑기 할아버지는 언제나 별말 없이 아이들이 뽑기 만드는 것을 도왔다. 뽑기 국자에 설탕을 한 숟갈 넣고 연탄불 위에 올려 살살 녹을 때까지 젓가락으로 뒤적뒤적거렸다. 어느 정도 녹으면 돈을 낸 아이에게 건네고, 받아 든 아이는 한쪽에 있는 소다를 젓가락으로 찍었다. “너무 많이 넣으면 쓰다잉.” 할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소다가 묻은 젓가락을 녹은 설탕 안에 넣고 휘휘 저으면 금세 갈변하며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달콤한 캐러멜 향이 훅하고 풍겼다. 모여든 아이들의 콧구멍이 동시에 벌름벌름거렸다.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할아버지는 아이의 국자를 넘겨받아 설탕이 뿌려진 쟁반 위로 탁 하고 내리쳤다. 황갈색 찹쌀떡 모양으로 떨어진 그것을 할아버지는 호떡 누르는 틀 같은 것으로 지그시 눌러 얇게 폈다. 그리고 다시 아이에게 말했다.

“무엇으로 찍어줄까?” 무늬를 낼 모양 틀을 묻는 것이다. 아이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한다. 하트 모양을 선택해야 떼어내기가 쉽다. 부서지지 않고 성공해야 하나 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별 모양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와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왠지, 오늘은 성공할 것만 같다. 마침 옆자리 앉은 친구가 “한번 해봐”라며 부추긴다. 그래서 호기롭게 말한다. “별이요.”

순간 집중되는 이목. 별이다, 별.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들어간 곳이 많은 별은 고난도다. 각각의 꼭지가 모두 난관이지만, 아직 덜 굳은 상태에서 신속하게 떼어 낸다면 불가능도 아니다.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곧 실패로 직결되기에 아이는 채 굳지 않은 뽑기를 잽싸게 집어 든다. 망설임 없는 손놀림으로 빠르게 덩어리들을 뜯어낸다. 예상대로다. 총 다섯 개의 꼭지 중 세 개까지는 순조롭다. 초등학교 1학년도 숙련되면 할 수 있다.

문제는 뽑기가 딱딱하게 굳은 뒤에야 공략하게 되는 나머지 두 개의 꼭지다. 이때부터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 아닌 하늘의 뜻이다. 이쑤시개라도 있다면야 침을 발라 톡톡 떼어낼 수 있다지만 뽑기 할아버지는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실로 냉철하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맨손으로 겨뤄야 하는 진검승부. 아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뽑기를 눈앞에 바짝 끌어놓은 채 떨리는 손을 신중히, 더없이 신중히 움직인다. 흡사 알프스산맥에 있는 마터호른 최정상을 눈앞에 둔 채 다음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하나 고민하는 산악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톡’. 네 번째 꼭지에서 아이는 그만 실수를 저지른다. 아니, 그것은 운명이었으리라. 이내 터져 나오는 탄식, 비탄, 애도, 그리고 분노. 허나 세상은 원체 비정하다. “자, 다음 차례.” 할아버지는 기다리는 아이를 향해 국자를 건네며 말한다. 정상 등정에 실패한 아이는 미련 없이 일어나 다음 아이에게 자리를 건넨다. 그 모습이 사뭇 비장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비위생적이란 이유로 뽑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자라긴 자랐다.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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