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보통의 디저트
내 동생은 팬케이크를 잘 만든다. 신기할 정도다. 특별한 재료를 쓰는 것도 아니다. 시중에서 파는 팬케이크 ‘믹스’를 이용해 반죽을 만들고, 평범한 프라이팬에 구워낼 뿐인데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모양이 예쁘다. 반죽 표면으로 기포가 생기지 않고, 어느 한 면의 색이 더 짙게 구워지지도 않는다. 당연히 태우는 법은 없다. 맛이야 재료가 동일하니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씹히는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팬케이크 장인이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동생은 이십여 년 전에도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동생은 울면서 반죽을 만들었다. 방금 전에 내가 때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태어날 때부터 지어진 원죄 같은 형이었다. 그래서 동생은 울었다. 우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는 팬케이크 가루를 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동생은 여전히 찔끔찔끔 울며 바가지 안의 반죽을 저었다.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동생의 잘못도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마음 같아선 내 방에 들어가 화를 삭이고 싶지만, 좁은 골방 하나에서 살던 때라 달리 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동생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동생은 때때로 눈물을 닦으며 반죽을 저었다. 울면서도 그 과정에 정성을 다했다. 그것이 비결일까. 잠시 뒤 어머니가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을 가져다주었다. 동생은 반죽을 한 국자 떠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에 살살 펼쳤다. 이내 향긋한 냄새가 좁은 방 안에 가득 찼다. 동생은 화로 앞에 앉은 도자기 장인처럼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섣불리 뒤집개를 가져다 대며 익었나, 안 익었나 확인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때가 되었다 싶은지, 한 손에 든 뒤집개로 능숙하게 팬케이크를 뒤집었다. 탁 하고 드러나는 팬케이크의 모습은 포장 상자에 찍힌 사진과 똑같았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훌륭하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일지도….’
겉으로 말하진 않았다. 애매한 상황이니까. 다시 얼마 뒤 반대쪽 면도 다 익으면 동생은 완성된 팬케이크를 접시에 담고 다시 반죽을 한 국자 퍼 프라이팬에 펼쳤다. 내내 말없이 진행되는 그 과정은 종묘제례를 떠오르게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접시 위로 팬케이크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완성된 것은 나눠 먹었다. 나와 달리 동생은 마음씨가 곱다. 아무리 치고받고 싸웠어도 나눠줄 것은 나눠준다. 어차피 다 먹지 못해 나눠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라면 혼자서 먹을지언정 나누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나누어 먹을 만큼을 만들지도 않았겠지.
저마다 접시에 담긴 팬케이크를 안고 텔레비전을 보며 먹었다. 그쯤 되면 아까의 싸움도 어느 정도 잊히어 모르는 척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메칸더는 원자력 에너지로 힘이 솟는데 원자력이 뭔지 알아?”
“모르는데. 형은 알아?” “모르지” 같은 별 의미 없는 대화들. 와중에 몇 번인가 속으로 ‘아까는 미안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애매하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미안함도 애매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뜬금없이 ‘미안해’라고 말한들, 팬케이크를 얻어먹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 것 같아 신빙성도 떨어질 테니. 생각하면 할수록 여러모로 부족한 형이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지만.
김보통 만화가
그림 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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