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릿 릿펠트가 디자인한 까시나의 지그재그 의자. 크리에이티브랩 제공
‘지그재그’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다. 디자인적 매력도 있지만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어 인기가 높다. 가구, 건축, 패션, 생활소품에 이르기까지 많이 활용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게임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꼭 물질적인 것에서만 지그재그 모양이나 개념이 활용되는 건 아니다.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지그재그’가 활용된다. 고가형 스마트폰과 저가형 스마트폰을 번갈아 내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지그재그 마케팅 전략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외교 전략에도 응용된다. 최근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냉온탕을 왔다갔다 하는 지그재그식 대북 외교가 화제가 됐다. 이 정도면 거의 삶의 일부분 아닐까? 실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지그재그’가 사용되고 있는지 가상 인물의 하루를 재구성해봤다.
지그재그 마니아 김지그씨는 30대 중반의 싱글 남성 직장인이다. 싱글 라이프가 유행이라 따라하려는 건 아니다. 혼자 벌어 혼자 쓰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나서 결혼 생각을 잠시 접기로 했다.
인테리어·패션 등 광범위 적용
어느 휴일 아침, 평소보다 한두 시간 늦게 일어난 김씨는 침대에서 기지개를 폈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미쏘니의 지그재그 패턴 이불을 사용하고 있다. 미쏘니는 화려한 색감의 지그재그 패턴을 사용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침대 쿠션은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유명한 이딸라 제품이다. 이딸라는 최근 명품 브랜드 ‘잇세이 미야케’와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홈 컬렉션을 발표했는데, 지그재그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패션계에서 꾸준하게 유행하는 지그재그 문양이지만 지난해 겨울부터 인기가 부쩍 올라갔다. 이딸라의 협업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도 지난해 12월 세계적 슈즈 디자이너 니컬러스 커크우드와 협업한 여성 핸드백을 발표했는데 핵심 디자인이 지그재그다.
지그재그 패턴을 이용한 이딸라와 잇세이 미야케 협업 제품들. 이딸라 제공
지그재그 패턴을 이용한 이딸라와 잇세이 미야케 협업 제품들. 이딸라 제공
지그재그 패턴을 이용한 이딸라와 잇세이 미야케 협업 제품들. 이딸라 제공
자리에서 일어난 김씨는 습관처럼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었다. 김씨는 최근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바리스타 바빈스키가 출연한 요리 프로그램에서 알려준 방식으로 드립 방식을 바꾸었다. 보통 시계 방향으로 주전자를 돌려 물을 붓는 게 정석이지만 바빈스키는 마지막 세번째 ‘물 붓기’는 지그재그 방향으로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래야 가라앉아 있는 원두의 향이 살아난다고 한다.
커피를 내린 김씨는 자신이 ‘최애하는’(가장 좋아하는) 지그재그 의자에 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지그재그 의자는 네덜란드의 산업 디자이너 헤릿 릿펠트가 1932년 디자인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기적 명성의 의자다. 군더더기 없는 본질적 요소만으로 구성된 의자는 ‘앉는다’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1930년대 오리지널 제품을 사기는 ‘넘사벽’이지만, 최근에도 계속 생산이 되고 있기 때문에 큰 마음 먹으면 구입할 수 있다. 현재 국내의 한 가구업체도 수입해서 판매 중이다.
헤릿 릿펠트가 디자인한 까시나의 지그재그 의자. 크리에이티브랩 제공
지그재그 의자에 앉아 지그재그 방식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는 김씨가 즐겨 듣는 음악은 재즈다. 재즈의 기본은 ‘스윙’이다. 스윙은 ‘리듬을 흔든다’ 정도로 해석된다. 리듬을 지그재그로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재즈의 기본도 역시 지그재그인 셈이다.
커피를 마신 김씨는 드레스룸으로 갔다. 겨울, 그의 손이 항상 먼저 가는 것은 헤링본 재킷이다. 헤링본은 ‘청어의 뼈’(herringbone)라는 뜻의 직물 디자인이다. 지그재그와 다름이 아니다. 지그재그 패턴은 생선뼈의 패턴과 닮아 있다. 그래서 자연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다. 헤링본은 정말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다. 왜 그럴까.
캠브리지 멤버스 헤링본 재킷. 코오롱FnC 제공
신사복 브랜드 ‘캠브리지 멤버스’ 이정미 디자인 실장은 “패턴 간의 간격이나 컬러 배열에 따라 원단의 느낌이 극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클래식하게, 때론 트렌디하게도 연출할 수 있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멋이 있지만 조금 변형하면 ‘엣지’있게 변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란 얘기다.
고객 동선도 지그재그
집 밖으로 나온 김씨는 택시를 타고 오랜만에 백화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광화문의 디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 미팅으로 많이 오던 곳이지만, 전경을 자세하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건물은 네모반듯하지 않게 중간중간 블록을 쌓는 것처럼 지그재그 방식으로 지었다. 이런 지그재그 방식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오기사’란 필명으로 알려진 오영욱 건축가는 “지그재그 방식으로 올린 건물은 율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건물이 크기만 하면 권위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자칫 심심하거나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건물 밖에서 바라보는 시민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멈춰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는 의미다.
에스(S) 백화점에 도착한 김씨는 쇼핑을 시작했다. 바닥을 보니 역시 헤링본 패턴으로 마감을 했다. 한동안 가정의 나무 마루나 상업 건물의 바닥 타일 장식은 일직선이었다. 이것이 최근에 헤링본 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밋밋한 느낌에서 율동감과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리빙업체 하농 관계자는 “일부 호텔 등 고급 시설에만 쓰던 헤링본 바닥 패턴을 최근 일반 가정집에서도 많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장을 둘러보던 김씨는 자기가 백화점 복도를 지그재그로 걷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다분히 백화점 쪽에서 의도한 것이다. 지그재그 고객 동선은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다. 상점을 나온 사람은 자연스럽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진행하게 돼 있는데, 이때 대각선 쪽에 상점을 두어 최대한 많은 곳을 들러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용객은 복도 가운데를 지나가면서 눈만 돌려도 대충의 아이쇼핑이 가능하다.
소파에 쓸 지그재그 패턴 쿠션을 산 김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 삼아 계단을 올라가던 그는 ‘여기도 지그재그네’라며 피식 웃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일상적인 생활 건축에서 계단은 대부분 지그재그 방식이다. 이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가장 빨리 올라갈 수 있도록 지그재그 형태를 이용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경우다. 경기대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는 “계단이 일직선이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를 가져온다. 건물 규모도 엄청나게 커져야 한다. 아파트 같은 건축물에선 지그재그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지그재그 속에서 살았네.” 새로 산 지그재그 쿠션을 안은 김씨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곧 렘수면에 빠진 김씨의 눈은 지그재그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Zigzag
지그재그. 알파벳 제트(Z) 또는 한자 갈지(之)자 형태나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함. 프랑스어로는 ‘우여곡절’이란 뜻도 있음. 건축, 패션, 게임 등 일상생활에서 두루 쓰이고 있으며,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행동이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