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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혼, 이젠 당당하게 말할 때!

등록 2018-02-22 10:10수정 2018-02-22 11:11

[ESC] 커버스토리

한때 이혼은 금기어
이혼 증가 추세로 사회적 시선 변화 중
2016년 한 해 10만7300여 쌍 이혼
이혼식·졸혼·탈혼 등 신조어도 등장
“이혼, 이별을 배우고 한층 성숙해지는 과정”
인기 웹툰 작가 이말년이 최근 네이버웹툰에 연재한 <이말년씨리즈 2018> ‘본격 이혼식 만화’ 편에서 주요 장면을 갈무리했다. 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혼이 일상화된 현실을 풍자했다. 네이버웹툰 제공 (그림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혼은 새장과 같다. 새장 밖의 새들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새장 안의 새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결혼이란 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장 안의 새가 꿈꾸는 새장 밖은 곧 이혼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 가운데 이혼을 한번이라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과거엔 이혼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지는 일종의 금기였다. 남자에게는 ‘가정 하나 잘 꾸리지 못한 무능력자’, 여자에겐 ‘말 못할 사연’ 등의 색안경이 덧씌워졌다.

이혼은 금기시된 단어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근대의 산물이다. 법치국가의 틀이 잡힌 뒤 이혼은 법으로 정한 절차에 따라야 했다. 그 전에는 남편이 아내를 쫓아내는 식이 다반사였다. 한국에선 ‘소박맞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임신을 하지 못하는 등의 ‘칠거지악’이 대표적 이유였다. 소박맞은 여성을 소박데기라 불렀다.

한국에서 근대적 이혼이 등장한 건 1897년 광무개혁 이후다. 남편이 멋대로 아내를 쫓아내는 것을 법으로 막은 것이다. 이 즈음 신문을 보면 이혼은 ‘뉴스’였다. 아무개가 아무개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자세하게 보도했는데, 여성이 소송을 내면 특히 더 주요하게 다뤘다. 언론에선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당시 퇴폐의 상징인 ‘자유연애’와 묶어 비난했다. 문화적 충격이었던 거다. 정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이혼은 이제 일상이 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한 해 10만7000건의 이혼이 이뤄졌다. 한 해 동안 21만4000명의 이혼 남녀가 생겼다는 의미다. 15살 이상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일반이혼율은 4.9건에 달한다. 15살 이상 인구 1000명당 10명은 이혼했다는 뜻이다. 65살 이상의 황혼 이혼도 전체 이혼 건수의 5.7%를 차지했다. 전체 이혼 건수는 정체된 상태지만, 황혼 이혼의 경우 점점 증가 추세다. 백년해로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당장 지금이 아니어도, 이혼은 나의 미래, 또는 우리 모두의 미래일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혼 선배’란 말까지 있을까.

전통적인 결혼관이 해체되면서 이혼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졸혼’, 결혼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의 ‘탈혼’이란 단어도 생겨났다. 이 시대의 이혼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나가는 김구라, 서장훈은 본인의 이혼 사실을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혼은 창피한 것이 아닌, 연애하다가 헤어진 정도의 수준이다. ‘돌아온 싱글’이라는 뜻의 ‘돌싱’은 오래된 말이고, 편하게 “한번 다녀왔다”는 정도로 이혼을 얘기하는 세상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할 수 없다. 웹툰 작가 이말년은 최근 ‘2018 이말년 씨리즈’에서 이혼식을 주제로 만화를 연재했다. 실제 서구나 일본 사회에선 사람들을 초청해 여는 이혼식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혼 케이크나 파티 등 이혼을 활용한 이혼 마케팅도 유행이다. 언제 이러한 문화가 한국에 들어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이혼 라이프’를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이혼 그 이후에 관한 얘기다. 어두운 회색빛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혼 조장이 아니냐고? 천만에!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혼 뒤 겪을 수 있는 상실감 극복법, 다시 찾아온 사랑 지키는 법, 재미난 다른 나라의 이혼 마케팅 등을 두루 다뤘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생각지도 못한 이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는 여전히 뜨고 삶은 지속된다. ‘잘 살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혼 라이프를 살펴보고 이해하자는 의미의 커버스토리다. 무엇이 됐든 자신의 생을 건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고, 우리는 그 선택에서 배워야 하니까.

“이혼은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우리는 만남뿐만 아니라 이별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나는 그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많이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이서희 <이혼일기> 중에서)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이혼

부부가 유지되어온 결합 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크게 협의 이혼과 재판 이혼이 있다. 재판 이혼은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으로 나뉜다. 최근 국내 한 재벌 총수 부부의 이혼 조정 실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매해 10만건 이상 이혼이 이뤄지는데, 설과 추석 명절 뒤 신청 건수가 급증한다. 현재까지 최고의 이혼 위자료는 1999년 미국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전 아내에게 준 17억달러(약 1조8200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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