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머리를 길러온 김병철씨. 김병철 제공
남자들의 머리는 너무 뻔하다. 대부분 귀가 보이는 옆머리, 셔츠 깃 위로 올라오는 뒷머리를 하고 있다. 공무원이나 금융권 같은 보수적 분위기의 직장에서 남자의 머리는 더더욱 짧아진다. 거기에 ‘2 대 8 가르마’까지. 짧은 머리는 단정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질리지 않는가. 인생의 절반 정도를 이러한 헤어스타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 말이다. 짧고 반듯한 머리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멋쟁이로 만들어줄 남성 단발 팁을 준비했다.
머리 기르고 자유를 얻었다
먼저 용어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 단발은, 역설적이게도 장발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자행된 장발 단속을 봐도 그렇다. 당시 경찰의 단속 기준은 ‘남녀의 성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긴 머리’,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옷깃을 덮는 머리’, ‘파마 또는 여자의 단발 형태의 머리’였다.
위 기준을 어길 경우 경찰서로 강제 연행돼, 머리를 깎겠다는 각서를 쓰거나, 경찰서 내 이발관에서 머리를 자른 뒤 풀려났다. 당시 히피 문화의 상징이 남성 장발이었는데, 박정희 정권은 이 장발 문화가 퍼지는 것을 꺼렸다. 남성의 장발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와선 장발이란 표현보단 남성 단발이란 용어로 통합됐다. 포털 검색어도 그렇다. 헤어 디자인 쪽의 공식적인 용어는 ‘미디엄 커트 헤어’다. 중간 길이 정도 되는 헤어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남성의 경우 보통 귀에서 턱 사이 길이를 말한다.
남성이 머리를 기르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발을 유지하면서 일탈의 쾌감을 느끼는 ‘단발남’이 적지 않다. 직장을 관두고 세계 여행 중인 김병철(35)씨가 그 예다. 김씨는 2016년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스타일로, 성인이 돼서는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항상 단정한 머리를 하는 게 싫증”이 난 김씨는 직장을 관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면서 과감히 머리를 기르기로 했다.
머리를 기른 뒤 인생이 달라졌다고 김씨는 말한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과 점심 뒤 커피를 먹을 때도 ‘아메리카노 통일’ 분위기에 따라갔지만,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살아가는 쪽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말이다.
귀찮지 않을까. 막상 기르고 나면 별다른 단점이 없다고 한다. 김씨는 “아침에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긴 거 말고는 불편한 건 없다. 삶에 자극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 중이다. 그의 긴 머리에서 자유로운 삶이 묻어나왔다.
얼굴에 살이 많다면 참아라!
김씨처럼 단발을 해보고 싶은 이들이 많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도도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우선 자기가 단발에 어울리는 얼굴인지 확인 먼저 해야 한다. 멋있게 보이려고 한 단발인데, 어울리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비호감 지수가 올라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형과 살집이다. 얼굴이 크고 살이 많은 사람은 단발을 해선 안 된다. 골격이 드러날 정도로 마른 얼굴이 좋다. 개그맨 강호동이 단발을 했다고 상상을 해보라. 아니 우리는 개그맨 정형돈의 단발을 기억하고 있다. 얼굴 살이 많은 경우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기 때문에 단발의 효과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 큰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추저분하게 보일 수 있다. 남성에게 단발은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멋있지 않다면 굳이 단발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배우 류승범은 남성 단발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소 1년은 길러라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인내다. 일단 1년은 참고 머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병철씨도 2년 동안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기르는 중간 지저분하기 때문에 다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다듬는 것도 결국 머리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다. 아예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길이는 너무 과해도 부담스럽게 보인다. 턱선 약간 밑까지 기르는 게 가장 멋있고 스타일링이 쉽다.
머리가 힘이 없는 ‘직모’라면 펌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직모가 단발머리를 하면 개그맨 최양락처럼 된다. 남성 단발의 경우 ‘뽀글이 파마’라고 하는 컬이 많이 들어간 펌이 아닌, 알파벳 C 모양의 ‘C컬 펌’을 많이 한다. 컬이 적당히 있으면 손질이 쉽고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도 어렵지 않다. 염색을 하고 싶다고? 참기 바란다. 남성 단발에 염색을 잘못하면 남성미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가수 강남을 떠올리면 된다. 기어코 하고 싶다면 밝은색이 아닌 어두운 색으로 해야 한다.
고민하기 싫다면 자신의 스타일을 잘 살려줄 남성 헤어 전문 디자이너를 찾자.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면 최소한 실패하진 않을 거다.
굵은 뿔테 안경과 수염은 단발과 어울린다. <한겨레> 자료사진
적당한 기름기와 수염은 필수
평소 관리도 중요하다. 헤어 제품을 사용해 평소 기름기 있는 머릿결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건조해서 풀풀 날리는 머리보다는 약간 기름진 머리카락이 훨씬 매력적이다. 제품은 너무 딱딱하게 굳는 하드 왁스나 젤이 아닌, 적당한 굳기의 포마드나 소프트 왁스를 사용하는 게 좋다.
헤어스타일 연출에 자신이 없으면 머리를 뒤로 넘기기만 하면 된다. 남성 단발의 최대 장점이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올백’ 스타일은 남성미를 강화시킨다. 머리를 묶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금씩 삐져나온 잔머리가 야성미를 느끼게 해준다.
수염은 가능하면 기르는 게 좋다. 단발과 수염은 찰떡궁합이다. 남성미를 발산시킬 뿐만 아니라,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머리 쪽 시선을 아래쪽으로 분산시켜 준다. 안경도 굵은 뿔테가 어울린다. 할리우드 스타인 조니 뎁을 떠올려보자.
옷도 중요하다. 동양 남성의 경우 양복과 장발은 어울리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얼굴이 서양인들에 견줘 크고 팔다리가 짧기 때문이다. 단발에 양복은 이탈리아 모델들에게 양보하자. 거친 느낌의 단발에는 청바지를 위주로 하는 캐주얼이 제격이다. 여기에 빈티지 스니커즈와 워커 스타일의 신발이 제격이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한 사례는 배우 류승범이다. 류승범은 헤어 디자이너들이 꼽는 최고의 단발 성공 사례다. 얼굴 살이 적고 호리호리한 체형에다가 수염까지 길렀다. 류승범은 머리를 기르기 전보다 지금이 대중적 이미지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상승했다. 남자가 머리를 기르면 정말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움말 최가을 바버숍 ‘헤아’ 아모레퍼시픽점 점장
단발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선 남짓 되는 머리 모양. ‘단발병’이란 용어가 봄철마다 유행. 단발머리 모양이 잘 어울리는 연예인을 보고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지 않고 단발을 고수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배우 고준희는 대표적인 연예인. 최근 배우 김남주는 드라마 <미스티>에 단발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