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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우유라면이냐, 쌈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록 2018-03-29 10:29수정 2018-03-29 16:57

[커버스토리] 괴식 vs 제철식
’우유콜라라면’으로 괴식 주목
먹거리 재미·놀이로 자리매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인기로 제철식도 관심
같은 시대 다른 음식의 매력
동화 <단추수프>는 커다란 솥에 물과 단추를 넣어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프를 끓이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진 고기며 채소를 보태서 결국 진짜로 맛 좋은 수프가 만들어진다. 나눔을 교훈으로 삼는 이야기지만, 동화를 읽은 어린이들은 단추수프의 맛을 궁금해하며 침을 꼴깍 삼켰을 테다. 맛을 상상하는 일은 즐거우니까, 어른이 되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과연 단추수프는 언제 맛있어졌을까? 단추와 수프가 맞는 조합이긴 한 걸까? 갖가지 재료를 넣다가 괴식이 돼버리지는 않았을까?

우유콜라라면.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우유콜라라면.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채소 쌈밥. 박미향 기자
채소 쌈밥. 박미향 기자
어울리지 않는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탄생한 기상천외한 음식, 이른바 괴식이 화제다. <에스비에스>(SBS)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가수 태진아가 만든 ‘우유콜라라면’은 방송과 함께 곧바로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우유와 신김치, 끓여서 식힌 콜라까지 넣는 태진아의 라면 레시피를 따라 해본 이들의 후기가 잇따르며 방송 일주일이 지나 다시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의외로 맛이 있다’는 평들이 적지 않다.

음식으로 장난(?)친 첫 번째 예능프로그램은 <한국방송>(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이다. 아메리카노와 구분하기 힘든 까나리액젓 음료 ‘까나리카노’나 고추냉이를 잔뜩 넣은 음식은 야외 취침을 하게 될 멤버를 결정하는 ‘복불복 게임’에 이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괴상한 음식들이 고통스러운 벌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생강과 마늘, 고추냉이가 들어간 고구마케이크처럼 상식 밖의 조합으로 만든 음식들이 게임의 긴장을 최고조로 올리는 짜릿한 소품으로 쓰인 것이다. 전쟁을 겪고 굶주림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 한국에서 식재료의 낭비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방송 또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다뤄왔으나, 나영석 피디는 괴식에서 재미를 끌어냈다. 멤버, 즉 무리의 일원으로 게임에 참여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괴식은 즐거운 놀이가 된다.

육포전·쥐포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육포전·쥐포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1박 2일>로 한국 예능 속 원조 괴식을 만들어낸 그는 <티브이엔>(tvN)의 <삼시세끼>에서 이런저런 반찬을 섞어서 저마다의 취향으로 만든 비빔밥을 먹는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 무리를 ‘우아한 괴식’을 즐기는 모습으로 포장해 내보내기도 했다. 맛의 조합을 상상하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예전 같으면 미간을 찌푸릴 법한 음식들의 대우도 달라졌다. 공인된 레시피, 소문난 맛집 정보로 넘쳐나는 온라인 공간이지만, 괴식 리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얼핏 봐서는 맛을 알 수 없는 제품들을 먹어보고 적극적으로 품평한다. 에스엔에스(SNS) 시대의 괴식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놀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실패 없이 수준 높은 경험을 원하는 ‘가성비’ 소비 경향 속에서 편의점 진열대를 돌며 괴상한 과자와 신제품 음료나 한정판을 집어 드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리스크가 적은 일탈이기도 하다. 라면 포장지의 ‘조리 예’와 삼만 광년 떨어진 괴식 레시피를 따라 하는 이들은 제품을 해체하고 재조립해 본래 의도를 벗어나는 재미를 찾는다. 과자업계는 간장치킨 맛 감자 칩을, 치킨업계는 과자 맛 치킨을 내놓는 지금의 식품업계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협업으로 분주하다.

토마토두부샐러드. 박미향 기자
토마토두부샐러드. 박미향 기자
괴식 열풍이 놀이에 가깝다면, 제철 식재료로 나를 위한 끼니를 만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자연과 요리를 통한 휴식을 말한다. 영화 속 혜원(김태리)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키우고 채집한 재료를 저장하고 조리하는 모습은 도시생활자 관점에선 효율이 높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도시의 효율에 맞춰 시간을 쪼개고 노력했으나, 보상을 얻을 수 없었던 혜원에게 자신의 손으로 과정을 통제하고 결과를 내는 요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방편이 된다. 혜원처럼 계절요리나 식재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요리를 시도해도 괜찮을까?

혜원과 친구 은숙(진기주)이 눈물이 나고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매운 떡볶이를 만드는 장면에 이런 대사가 있다. “최고의 요리는 자기가 직접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조금 서툴러도, 괴식이 되어도 괜찮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살피고 그에 맞는 재료를 조합해 결과물을 내며 얻는 충실감은 요리를 해봐야 얻을 수 있다. 영화가 혜원의 엄마(문소리)와 얽힌 음식의 기억을 계속 호출하면서도 그 요리들을 ‘어머니 손맛’처럼 막연한 향수나, 재현 불가능한 무엇으로 두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번 주 ESC는 <목요 괴식회>를 열어 소문난 괴식 레시피를 직접 체험했다. 괴이한 치킨을 누가 만드는지, 먹어보기는 하는지 궁금증을 풀러 치킨회사도 찾아갔다. 조희숙 한식전문가가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제철식도 선보인다. 괴식만큼이나 조리가 쉽고 창의적이다.

‘우유콜라라면’ & 괴식 - ‘리틀 포레스트’ & 제철식

방송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태진아가 만든 ‘우유콜라라면’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괴식으로 화제가 됐다. 괴식은 아이스크림에 라면 수프를 뿌려 먹는 등 기이한 식습관을 뜻하나 최근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창조한 맛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기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도시에 살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제철식을 해 먹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얘기가 담겨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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