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한강공원 앞 서래섬과 한강. 서래섬은 1980년대에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이병학 선임기자
작가 한강이 쓰고 데버라 스미스가 영문으로 옮긴 <흰>(The White Book)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자 명단에 포함됐다. 2016년, <채식주의자>가 같은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다시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이다.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어 낸 <흰>은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래된 부분과 새것인 부분이, 삶과 죽음이, 어둠과 빛 사이가 “자연스럽게-기이하게 아프게” 연결되어 있다.
한강을 통해 한강을 떠올린다. 사람 이름과 강의 이름은 모두 고유명사다. 두 이름이 같아서 오는 혼동 덕분에 작가 한강을 검색하다가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강, 한강에 대한 글을 뒤적이기도 한다. (산만한 사람들에겐 늘 있는 일이다.) 지난 22일에 열린 ‘2018 한강 멍 때리기 대회’ 소식에 키득거리고, 여의도와 반포 한강공원 등지에서 3월말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판을 벌이는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나들이를 계획한다. 작년 여름엔 반포대교 하단 잠수교에 800t의 모래를 부어 한강 백사장을 재현한다는 행사를 기다렸다. ‘잠수교 바캉스’는 집중호우 예보로 연기되었다가 결국 취소되기도 했다.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앞 야경. ‘튜브스터’를 탄 이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밤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튜브스터는 파라솔·탁자가 설치된 6인승 모터보트다. 이병학 선임기자
한강에 백사장이라니. 지금은 생소하지만 1960년대까지 한강은 ‘강수욕’을 즐기는 피서지로 이름이 높았고, 또 수십만명이 모이는 정치 공간이었던 역사도 있다. 1956년 5월3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신익희 선생의 한강 백사장 연설에 3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몰리자, 이후 자유당 정권은 민주당 쪽의 백사장 사용허가 승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견제했다.
좀더 익숙하고 가까운 풍경은 한강의 유람선이다. 1983년 발표된 박건호 작사의 ‘아! 대한민국’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로 시작한다. 한강 유람선의 정식 운항은 1986년 10월25일부터였다. 작사가 박건호가 3년이나 앞서 한강의 유람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까닭은 1982년 말부터 추진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청사진으로 유람선이 오가는 한강의 모습이 대대적으로 홍보됐기 때문일 것이다. 1986년 준공된 잠실보는 유람선이 다닐 수 있게끔 수위를 유지하는 구실을 했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부근 자전거길. 이병학 선임기자
한강종합개발사업이 한강의 라인과 깊이를 바꿨다면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는 한강 둔치를 전보다 덜 인공적인 풍경으로 바꾸고, 전보다 더 인공적인 세빛섬을 띄웠다. 오리배처럼 힘을 들일 필요가 없는 ‘튜브스터’를 타고 세빛섬 조명을 즐기며 ‘치맥’(치킨+맥주)을 하는 즈음에 한강 백사장에 피서 인파가 몰리던 시절의 사진을 ‘진짜 한강’으로 향수한다는 건 그저 남의 일 같다. (저 무렵의 기사에는 피서객이 몰리는 한강에 변변한 화장실이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변화의 주기가 짧은 도시에 살면서 무언가를 온전하게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까지 새것이었던 위로 덧씌워진 또 다른 새것을 분별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작가 한강의 <흰>은 ‘낯선 도시’에서 쓰였다.
기억하는 사람을 통해 한강을 떠올린다. 밤섬보존회 유덕문(79) 회장은 1968년 한강과 여의도 개발을 이유로 밤섬이 폭파되기 이전까지 섬에 살았다. 정지돈 작가의 단편소설 <건축이냐 혁명이냐>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사실과 사실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진술이 이음매 없이 연결되어 도리어 그 경계가 궁금해지는 소설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밤섬 사람들 자식들의 자식들은 밤섬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도 모를지도 모르겠다.’ 폭파로 사라졌던 섬이 다시 제 형체를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유 회장을 만났다. 밤섬을 왜 기억해야 하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저, 기록 하나를 보태기로 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한강
한강의 <흰>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같은 부문을 수상한 이후, 한강의 작품이 다시 후보에 오른 것. 또한 한강은 한국의 중부를 가로지르는 큰 강의 이름이다. 사람 이름과 강의 이름, 두 고유명사가 같아서 한강을 통해 한강을 떠올리게 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과 개발의 역사가 역동적으로 흐르는 한강은 다양한 놀 거리가 있고 문화 행사가 이어지는 시민의 쉼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