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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프랑스인이 사랑한 소형차

등록 2018-05-23 20:22수정 2018-05-23 20:36

[ESC] 신동헌의 으라차차
1963년형 르노4 파리지앵. 사진 르노삼성 제공
1963년형 르노4 파리지앵. 사진 르노삼성 제공
프랑스 자동차 제조회사 르노가 1961년에 내놓은 ‘르노4’는 여러모로 특이한 차였다. 당시는 자동차가 부의 상징이던 때여서 커다란 세단이나 스포츠카가 주류였지만, 르노4는 당시 르노의 회장 피에르 드레퓌스의 지휘 아래 작은 소형차로 설계됐다.

튀어나온 트렁크 대신 평평한 뒷면에 넓게 열리는 해치형 문을 달아 큰 짐도 실을 수 있었고, 평상시에는 뒤쪽이 앞쪽보다 높게 솟아있어 무거운 짐을 실어도 뒤쪽이 눌리거나 앞바퀴의 구동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 시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해먹을 달아 사람이 앉거나 짐을 싣거나, 아예 걷어낸 후 짐칸을 넓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 뒤 서스펜션(차체의 무게를 받쳐 주는 장치)은 짐을 실은 상태에서 승차감을 높이면서도 가격이 비싸지지 않도록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 덕분에 오른쪽 앞뒤 바퀴 간격이 왼쪽 앞뒤 바퀴 간격보다 길었다.

트럭도 아닌데 화물 적재를 중요시한 이유는 프랑스가 전통적인 농업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정부가 주도한 경제사회발전계획을 추진하면서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상당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그들이 가족과 함께 이동할 때뿐 아니라 일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는 농촌 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소형차들은 공랭2기통 엔진을 실었지만 르노4는 수랭4기통 엔진을 실어 상당한 고성능이었다. 엔진을 앞바퀴 뒤쪽에 얹어 무게 배분이 훌륭했던 덕분에 운전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네 명이 앉기에도 빠듯한 다른 소형차와는 달리 꽤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데다 달리기 성능까지 좋다보니 생산된 지 4년 반 만에 판매량이 백만 대를 넘어섰다.

열광적인 팬들이 생겨나면서 컨버터블이 등장하는가 하면 4륜구동으로 개조해서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프랑스가 전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비결을 흔히 관민 혼합경제 덕분이라고 하는데, 정부와 기업이 국민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국민이 호응했다는 점에서 르노4는 자동차 분야 혼합경제 성공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르노4는 1972년 후속모델 르노5가 등장한 후에도 계속 생산됐고, 1992년까지 30년 동안 800만대가 넘는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최근 국내에 등장한 르노 클리오는 르노4와 르노5의 뒤를 잇는 후속모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농민이나 소상공인을 위한 차의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 차체에 필요 충분한 공간을 갖추고 활발하게 달리는 차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수입차면서도 199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격 책정을 보면 프랑스에서 처음 태어나던 때의 박애주의 정신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많이 팔려서 르노삼성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되는 날도 기대해본다.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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