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기간 중에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치킨집은 전화가 불통일 정도로 인기를 끈다. ‘치맥(치킨+맥주)’이란 말은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도 통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건 24시간 내내 뭐든지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배달 시스템이다. 음식 배달의 역사는 과거 외식의 대명사였던 ’화교인 상인(화상)’의 중국집들이 집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배달을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화상들이 고급 음식점으로서의 자존심을 꺾고 대중화를 노리면서 다양한 메뉴의 배달 문화가 퍼졌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신속 정확한 배달을 가능케 한 것은 사실 일본의 모터사이클-자동차 메이커인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다. 1950년대까지 모터사이클은 부자들의 놀이 도구에 가까웠다. 가격도 비쌌을 뿐 아니라, 빨리 달리거나 거들먹거리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이다.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의 소바집과 초밥집이 배달을 할 때 자전거를 이용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국수집 꼬마가 한 손에는 배달통을 들고, 한 손으로만 운전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만들라”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1958년에 혼다 슈퍼 커브가 등장한다. 오른손으로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조작하고, 클러치 없이도 조작할 수 있는 변속기를 달아 왼손을 자유롭게 만든 모터사이클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스쿠터보다 바퀴가 커서 길바닥의 상태가 나빠도 제대로 달릴 수 있었고, 엔진이 차체 중심에 있어 다루기 쉬웠다. 우리가 ‘시티100’이나 ‘88’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배달용 바이크가 바로 그것이다. 태어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은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1억대 생산을 돌파했다. 정식 라이선스 없이 복제되고 있는 것까지 합치면 수십 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김새나 구조가 완벽하게 동일한 타사의 제품이 나와도 혼다는 이것에 대해 소송을 걸거나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너무 많은 수의 복제품이 있어서 포기한 것인지 이 제품의 시작이 박애주의에 가까웠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혼다 슈퍼 커브는 자동차의 흐름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성능, 짐을 가득 실어도 불안해지지 않는 안정성, 좀처럼 고장 나지 않는 내구성까지 더해져 저렴한 상업용임에도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리고 있는 특이한 바이크다. 엔진오일이 없어도 달리고, 2층에서 떨어져도 달린다는 ‘전설’까지 생겨날 정도다. 1998년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모터사이클의 예술’ 전시에 포함됐고, 영국의 모터사이클 작가 롤랜드 브라운은 “혼다가 만든 모터사이클 중 1800cc짜리 대륙횡단용 모터사이클인 골드윙이나 세계 최초의 4기통 스포츠 바이크였던 CB750보다 슈퍼 커브가 훨씬 위대하다”라고 말한다. 동맥이나 정맥도 중요하지만, 모세혈관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혼다 슈퍼 커브는 전 세계의 골목길 구석구석을 다니며 지금 이 순간도 작은 행복을 배달하고 있다.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