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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혼다 어코드, 세계 중산층 가족을 만족시키다

등록 2018-07-26 09:48수정 2018-07-26 09:56

[ESC] 신동헌의 으라차차
혼다 ’어코드’. 혼다 제공
혼다 ’어코드’. 혼다 제공
사전적으로 비슷한 의미지만, 정치가들은 ‘서민’이라는 말을, 자동차 회사들은 ‘중산층’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두 단어 모두 특권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에 있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는데, 자동차는 20세기 초 귀족들의 탈 것으로 시작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경제력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만들던 자동차 회사들은 쇠퇴하고, 누구나 탈 수 있는 값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도요타에 엔진 부품을 납품하던 작은 회사였던 혼다는 1949년 첫 번째 모터사이클을 만든 지 불과 십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산 대수를 자랑하는 모터사이클 생산업체가 됐다. 그 여세를 몰아 첫 번째 자동차인 소형 트럭을 생산한 1963년 당시는 전후의 호황을 타고 이탈리아제 스포츠카와 미국제 대형 세단이 한참 인기를 끌던 때여서 일본의 작은 회사가 만드는 자동차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전 세계 ‘서민’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이동할 수 있도록 값싸고 고장 나지 않는 교통수단을 제공한다는 혼다의 이념은 자동차를 만들 때도 잊혀지지 않았고,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호화로운 고성능 차를 만들 때 누구나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가족용 차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1972년에는 소형차 ‘시빅’을 선보였는데,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 시장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작은 차였지만 이듬해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과 함께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고무된 혼다는 1976년 시빅보다 조금 더 큰 ‘어코드’를 발표했다. 커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소형차였지만, 4인 가족이 타기에 충분한 크기였고 이전의 승용차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연비에 고장이 적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혼다는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42년간 10세대에 걸쳐 생산되면서 어코드는 자동차 세계에도 존재하던 다양한 종류의 장벽과 계급을 타파했다. 고급차와 실용차의 장벽을 무너뜨렸고, 값싼 승용차도 고품질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스태그플레이션(물가가 상승하는 불황 시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중산층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가족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 처음에는 뒤 유리문과 트렁크가 함께 열리는 소형 해치백 형식이었지만, 이후 차체가 커지면서 세단과 쿠페, 왜건 등 다양한 형태로 생산됐다. 이 또한 중산층들의 삶의 방식이 다양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어코드는 국내에 2004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에서 인기를 경험한 유학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국내 수입차 업계 최초로 연간 판매 1만대를 돌파하며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급차 위주의 수입차 시장에서 이는 놀라운 사건이었고, 위기감을 느낀 국산 브랜드들이 내수 시장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으면서 전 세계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착실히 성장하도록 도운 어코드가 자동차가 아니라 정치가로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훌륭한 사람이 됐을 거다.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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