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대만에 갔다. 아니, 도망쳤다. 출발 당일도 새벽까지 일했다. 도망치면서 끝까지 일을 붙잡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먼동이 터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쉬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닌 채 쉬고 싶다.
3년 전, 장편 연재를 마친 뒤 작업실을 얻었다. 생활과 업무를 분리하기 위해 작업 도구를 작업실에 옮겼다. 10평이 채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 빈둥대다 집에서 비올라를 가져왔다. 언젠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놓기만 한 채 방치해 둔 것이었다. 시간이 생겼으니 한번 시작해 볼까 싶었다. 그러나 현악기를 배워 본 적이 없다. 혼자 낑낑대봤지만 잘되지 않아 과외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습을 받으니, ‘학교 종이 땡땡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일이 들어왔다. 연재 중에는 통 들어오지 않던 외주가 연재가 끝나니 들어온 것이다. 간만에 손에 쥔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 직원을 뽑았다. 좁은 오피스텔에 책상이 두 개 들어섰다. 교습은 계속했다. 일도 계속 들어왔다. 직원을 한명 더 뽑았다. 원래 있던 책상 두 개는 직원이 쓰고, 나는 접이식 책상에 앉아 일했다. 일이 많아질수록 연습 시간은 줄어들고, 교습만 간신히 받는 지경이 되었다. “연습 안 하시나 봐요”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일이 많아서요”라고 나는 답했다. 시간을 얻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는데,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곧 교습받을 시간도 부족해졌다. 처음엔 일하는 중간에 교습을 받게 되었고, 직원들은 쉬게 하였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일은 점점 많아져 잔업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나날이 지치고, 추가수당이 한 명분 인건비를 뛰어넘어 사람을 더 뽑았다. 동시에 오피스텔은 네 명이 근무하기엔 비좁아 근처 사무실로 이전하면서 교습은 끝이 났다. “틈틈이 연습하셔야 해요”라고 비올라 선생님은 말했다. “네”라고 답했지만 비올라는 다시 어딘가에 처박혔다.
그 뒤로는 재미없는 얘기다. 이제는 일이 끊기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직원이 한명일 때는 없던 책임감이 생겨 안 해도 될 일까지 받아서 했고, 일이 없으면 불안해 쉴 틈이 생겨도 쉬지 못했다. 잠을 자려다가도 한밤중에 사무실을 가는 일도 있었다. 그마저 번거로워 이내 집에도 작업 도구들을 마련해 놓았다. 원점으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었다. 몇 개의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채 시간은 흘러갔다.
무턱대고 도착한 타이중시. 밤을 새우고 도착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잠을 잔 것이다. 그저 잤고, 깨어나니 밤이었다. 그사이 많은 연락이 와있었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의뢰부터, 하는 일에 대한 보고, 해야 했던 일에 대한 독촉까지. 다른 나라로 도망쳤으나 모든 게 허사였다. 착실하게 로밍까지 한 내 탓이다.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 숙소를 나왔다. 눈에 띄는 아무 노점에나 들어가 쩐주나이차를 하나 주문했다. 버블티라는 이름으로 한때 유행했던 그것이다. 띠리리- 핸드폰 벨이 울렸다. 편집자였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문자로 알려주세요’ 받으려면 받을 수야 있지만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는 도망 중이니까.
“따거! 따거!” 점원이 힘찬 소리로 나를 불렀다. 밀크티가 완성된 것이다. 힘차게 “쒜쒜!”라고 외치며 받아들었다. 맛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번 주까지는 원고 넘겨야 해요’ 편집자에게 문자가 왔다. 밀크티를 쭉 빨아 마시며 답했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번 주에는 못한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를 잡으러 대만까지 올 것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일도 할 수 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선 슈퍼주니어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쏘리 쏘리 쏘리 쏘리. 실로 내 마음 그대로였다. 흥이 난 내가 따라 부르자 운전사가 물었다. “아유 싱어?” 귀가 안 좋은 사람인가 싶었지만 답했다. “아임 뮤지션” 밤거리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언젠가, 다시 비올라를 연습해야지’라고 태평한 다짐을 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