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이 세상을 떠난 지 38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콘이다. 과거 그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기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사망한 후에 태어난 이들까지 새로운 팬이 되고 있다.
특히 맥퀸은 ‘사나이’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생전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 몸매의 균형을 살리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했고,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8㎞씩 달렸다. ‘당수도’(태권도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전의 우리 무술)를 수련했고 자동차와 바이크도 즐겼다. 요즘에서야 미국이나 유럽에서 각광받는 라이프스타일을 그는 이미 반세기 전에 즐겼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바이크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였는데,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1964년 국제 바이크 경기에 미국 대표로 참가할 정도였다.
당시 그가 입었던 ‘바버 왁스드’(면에 왁스를 발라 방풍 처리) 재킷은 지금도 가을이면 남녀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또한 그가 탔던 바이크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출시되며 사랑받고 있다. 영국의 자동차 업체 ‘트라이엄프’의 바이크 ‘TR6 트로피’는 그가 출연한 1963년 작 영화 <대탈주>에도 등장한다. 맥퀸은 이 영화에서 독일군 역을 맡았지만 독일 브랜드인 ‘베엠베’(BMW) 대신 트라이엄프의 것을 고집했다. 비포장도로를 질주하거나 점프를 하는 장면을 그가 직접 타고 연기했기 때문에 고증보다는 익숙한 바이크를 사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TR6 트로피’보다는 ‘본네빌’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데, 이는 TR6 트로피를 개조한 것으로 미국 유타주 본네빌 소금사막에서 최고속도 기록을 경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본네빌’은 1960년대에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스포츠 바이크였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복고풍 모델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분위기를 뽐내는 디자인의 바이크를 타고 그에 맞는 패션을 갖춰 입는 것이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급 패션 브랜드 ‘벨루티’가 바이크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거나 귀금속 브랜드 ‘카르티에’가 광고에 바이크를 등장시키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이제 바이크는 불량스러움의 상징에서 멋의 상징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클래식한 정장 차림으로 복고풍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행사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펼쳐지고 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영국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데이비드 베컴도 복고풍 바이크 문화를 즐기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거리에서 말끔하게 빼입고 바이크를 타는 사람을 만난다면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시길.
글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 사진 트라이엄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