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요즘 이런저런 말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라고는 쉽게 말하지 못하겠어요. 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부터 모르는데 뭐라고 가르칠까요.
예를 들어 “치킨이 착하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한때 우리는 싸고 양 많은 치킨을 “착한 치킨”이라고 불렀어요. 비싼 치킨전문점을 악당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죠. 돈을 적게 내고 많은 고기를 뜯는 것을 선량한 시민의 정당한 권리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착하다”란 “값이 싸다”라는 뜻일까요? 이것으로 충분할지요?
소비자가 쓰는 돈을 줄일 때 중간 누군가는 제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른바 ‘후려치고 쥐어짜는 구조’라는 거죠. 저는 비슷한 품질이면 싼값을 선택하는 소비자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갑질 논란’을 빚는 프랜차이즈의 회장과 일가친척을 위해 변명할 생각은 더욱더 없고요. 하지만 가맹점주나 배달원을 비난하는 글은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유통가격을 내리기 위해 가맹점은 한 마리라도 더 팔아야 하고, 시간에 쫓기는 배달원은 목숨을 겁니다. 지금처럼 벌금을 물리기 전에는 헬멧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지요. 생산원가를 내리기 위해 양계 농가가 짊어지는 피 말리는 부담에 대해서는 일전에 <대한민국 치킨전>을 인용하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비용을 낮추는 일, 닭에게 못 할 짓이기도 합니다. 동물권에 대해 찬성하건 반대하건, 공장식 축산으로 닭 키우는 방식을 보고 들은 사람이라면 닭고기 먹을 때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겁니다. 육계 대부분은 비좁은 곳에서 스무하루를 살고 도살됩니다. 산란계는 서로 쪼지 말라고 부리가 썩둑 잘립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돌면 구덩이에 떼로 파묻히고요.
사정이 이러하니 가격이 싸다고 ‘착한 치킨’이라 말하기 불편합니다. 그럼 동물 학대를 하지 않고 닭을 키운다면? 소비자가 돈을 더 내더라도 생산자에게 제값을 준다면? 이른바 ‘윤리적 소비’가 나온 배경이죠. 게다가 시간을 주고 운동을 시키며 키운 닭은 스무하루만 키운 공장식 닭보다 살코기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지요?
옛날에 닭은 사위가 인사 오면 잡아주는 귀한 고기였죠. 돼지는 마을 잔치 때나 먹던 고기였고요. 달걀프라이도 좀 산다는 집에서나 먹는 반찬이었죠. “옛날 사람들은 고기 귀한 줄을 알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아무나 아무 때에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린다면? 조선 후기에 나온 책 <청성잡기>는 연한 고기를 찾아 병아리를 잡아먹다가 결국 집안이 망한 옛날 권신들을 소개합니다. 식도락으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의 원한을 사지요.
뾰족한 수가 없네요. 키우던 닭을 숲에 풀어줄 수도 없죠.(곰의 식용이 금지된 이후 곰 사육농장의 곰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일전에 소개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동네에서 치킨을 사 먹을 테고, 나중에 아이한테는 “착하게 굴면 치킨을 사주겠다”며 꼬드기겠지요. 물론 닭에게도 사람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 겁니다. 지금의 공장식 축산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계속하겠죠. 지금처럼 지면을 통해서도, 아이와 대화하면서도 꾸준히 이런 이야기를 할 겁니다. 미안한 마음이 잊히지만 않아도 세상이 나아질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지요?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