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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5 20:38 수정 : 2019.09.25 20:45

1TYM의 음악방송 무대. 유튜브 ‘에스비에스 케이팝 클래식’ 화면 갈무리.

헐~

1TYM의 음악방송 무대. 유튜브 ‘에스비에스 케이팝 클래식’ 화면 갈무리.
<에스비에스>(SBS)가 감정의 타임머신을 공개하자 나의 투쟁이 시작됐다. 지난 8월께 개설된 유튜브 채널 ‘에스비에스 케이팝 클래식’에서는 2000년 전후로 방송된 ‘에스비에스 인기가요’ 영상이 등장한다. 방대한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24시간 연중무휴로 돌리는 세기말의 재림이다. 채널을 클릭하자 사회자가 “다섯 전사를 소개합니다”라고 외쳤다.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H.O.T.)가 내려 입을 수 있는 한 내려 입은 바지로 무대를 싹싹 닦으며 등장해 곱게 편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매력을 흩뿌렸다. 처음 본 날 회사에서 이어폰을 끼고 2시간을 들었다. 가수 이정현도 화면에 나왔는데, 그는 지금 봐도 너무 멋있어서 당장 머리에 나무젓가락을 꼽고 노래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에 깜짝 놀랐다. 인기 가요와 먼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시절의 나는 스코틀랜드의 인디 록 음악에 흠뻑 빠져있었고, 티브이도 즐겨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화 유전자 깊은 곳에는 어느새 대한민국의 세기말 감성이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채널에 별명이 생기고부터 나의 투쟁은 시작됐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이 채널을 ‘온라인 탑골공원’, ‘온라인 노인정’ 심지어 ‘탑골가요’(탑골공원+인기가요)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벌써 노인정에 가고 싶진 않다”라고 외쳤다. 노인정을 ‘즐겨찾기’에서 지우고, 루피와 나플라, 조지(Joji)와 포스트말론을 들으며 감성을 정화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요즘 다니는 복싱 체육관에서 1990년대 인기그룹 ‘자자’의 ‘버스 안에서’가 흐르자 나도 모르게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라는 가사를 정확하게 흥얼거렸다. 샌드백을 때리던 어깨가 어쩔 수 없이 들썩였다. 휴, 이 싸움 그만두자. 유전자와는 싸우는 게 아니다.

박세회(허프포스트 뉴스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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