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16 20:45
수정 : 2019.10.31 10:22
이대형의 우리 술 톡톡
“맛있는 전통주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전통주 관련 강의를 할 때나 전통주에 관심은 있으나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한 제품을 추천하진 않는다. 대신 그에게 따로 묻는다. “좋아하는 술 종류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단맛의 농도는요?” 그런 다음 특정 전통주를 소개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무작정 추천하는 전통주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맛있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234개의 양조장(2019년 10월5일 기준)이 있다. 이중 전통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은 약 800개 정도로 추정된다. 업체당 제품 2개만 생산해도(실제로는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한다) 그 수는 엄청나다. 이것 중에는 국가나 지자체가 인정하는 민속주나 무형문화재급이 있다. 다양한 품평회에서 수상한 술이나 술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술들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콕 집어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난감하기도 하다.
더구나 이미 한국 주류 시장은 글로벌화돼 있다. 전 세계 맥주와 와인 그리고 사케, 위스키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술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런 술들에 견줘 우리 술이 어떤 맛이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게 낫다. 술은 기호식품이다. 주류 전문가가 맛있다고 평해도 내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 대중에게 인기가 있어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맛은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감칠맛 5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맛을 결정하는 데 혀의 역할은 크지 않다. 또 같은 단맛이라도 종류가 다양하다. 설탕의 단맛과 꿀의 단맛은 다르다. 혀가 이 미세한 차이를 잘 구별할 수 있을까? 맛의 상당 부분은 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맛의 90%가 향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사과의 단맛과 딸기의 단맛이 향에 의해서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주도 예외는 아니다. 재료가 같아도 향이 다르면 맛이 다르다고 느낀다. 여기에 추억과 분위기도 개입한다.
끌려온 회식자리에서 마시는 맥주는 같은 종류라도 더운 여름날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봄철 모내기할 때 마시는 새참 막걸리는 비 오는 날 전과 함께 마시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맛을 느끼는 요소로 심리나 기억 등을 거론하는 이유다.
술은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술을 마실 때의 몸 상태, 같이 먹는 사람들, 먹는 장소, 술을 경험한 정도 등에 따라 술맛을 다르게 느낀다. 결국 코와 혀를 통해 뇌에서 인지한 물리적인 맛에 심리, 기억 등이 작용해 맛에 대한 최종 평가가 내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맛있는 전통주’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오히려 우리 전통주의 특징을 잘 드러내며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을 소개하는 게 낫다. 마시고 경험하다 보면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술이 생기게 마련이다. 앞으로 기꺼이 ‘전통주 모험’에 나설 이들을 위해 길라잡이가 되어 보려 한다.
글 이대형(경기도 농업기술원 연구원),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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