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6 09:17
수정 : 2019.12.2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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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인. 사진 이대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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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우리 술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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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인. 사진 이대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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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통주 업계가 올린 큰 성과 중 하나는 한국 와인의 발견이다. 소비자는 아직 과실주라는 표현에 익숙하다. 유럽에서 정의하는 와인은 포도로만 만든 술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 와인은 포도를 포함해서 사과, 감, 머루 등 다양한 국내 생산 과실로 만든 술이다.
과실주하면 소비자 대부분은 가정에서 과일과 소주를 섞어 만든 술이나 포도에 설탕을 넣어 만든 매우 단 포도주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떫은 타닌과 적은 단맛이 특징인 유럽 와인보다 단 와인에 익숙하다. 19세기 말 독일인 오페르트가 쓴 <금단의 나라 조선>에 잘 드러나 있다. 그 책엔 ‘조선인은 샴페인과 체리 브랜디를 선호하며 그 외에도 백포도주와 브랜디 여러 종류의 독주를 좋아한다. 반면 적포도주는 떫은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런 입맛 때문인지 한국에서 처음 제조된 상업적 와인의 재료는 포도가 아닌 사과였다. 1969년께 생산된 애플 와인이다. 이후 포도를 이용한 제품이 생산되긴 했으나, 판매량은 맥주나 소주에 견줘 상대가 안 됐다. 하지만 1993년 지역특산주(농민주) 면허가 생겨나면서부터 한국 와인의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생산한 원료를 이용해서 술을 제조해야 하는 게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롤러코스터인가 보다.
2004년 한-칠레 에프티에이(FTA)가 타결되면서 포도 농가들은 타격을 입었다. 농민들은 자구책으로 새로운 부가가치 상품이 필요했다. 이때 여러 종류의 가공품이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가 한국 와인이다. 양조 기술의 수준은 열약했다. 집에서 설탕을 섞어 만든 포도주와 다를 바 없었다. 유럽 와이너리들이 사용하는 양조용 포도가 아니라 식용 포도가 재료였다. 당도는 낮고 즙이 많았다. 설탕을 추가로 넣지 않으면 알코올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들이 양산됐다. 소비자들은 외면했다. 많은 술 전문가들은 한국에선 와인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와인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양조용 포도품종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청수’라는 화이트와인용 국산 품종도 탄생했다. 식용 포도품종에 맞는 발효 방법도 개발됐다. 부족한 당도는 포도즙을 얼려서 수분을 제거하거나 수확을 늦게 하는 식으로 극복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과 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술의 질이 올라가니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는 국가행사 건배주로 한국 와인이 뽑히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단골 청와대 만찬주로 등극했다. 올해는 그 관심이 최고조인 듯하다. 프랑스 식당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 별 세 개 식당이나 고급 호텔에서도 한국 와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각종 와인 품평회에서 상을 받거나 소믈리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한국 와인들이 늘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매도 쉬워져서 판매도 느는 추세다.
한국 와인은 만들어진 지 이제 20년이 채 안 된다. 수백년 이상의 역사와 기술을 가진 외국 와인과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 와인의 강점은 한식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외국 와인에 맞는 한식을 찾는 게 아니라 한식에 맞는 우리 와인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오미자, 감, 머루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을 이용해 제조해서 친근감도 있다. 그동안 한국 와인은 ‘안 된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품질 안정화는 기본이고, 소비자들이 선뜻 살 수 있는 가격대가 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한국 와인은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전통주갤러리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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