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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7 10:11 수정 : 2020.01.17 10:14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8층 사는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다. 그는 내 한쪽 어깨에 멘 빨간 보따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곤 소리 없이 웃었다. 난 고개를 숙였다. 11층 집 현관문 밖 깜깜한 복도에서 산타 옷을 입었다. 바지, 윗옷, 혁대, 모자, 수염, 장갑,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카드를 손에 들었다. 변장 완료.

‘딩동’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고 아이들은 눈을 껌벅였다. 난 시선에 취약한 부위를 신경 썼다. 볼, 턱, 귀를 가리려고 거북이처럼 양어깨를 드높여 얼굴을 집어넣었다. 목소리는 바꿨다. 과장된 어조로 영어를 구사했다. “헬로!” “유(You) 선?” “유(You) 태?” 선(5)과 태(4)는 아이들 이름 중간 글자다. “웨잇 어 미닛!(잠깐만!)”을 외치고 카드를 건넸다. ‘선’에겐 ‘(동생을) 때리지 말고 잘 보살펴요’를, ‘태’에겐 ‘울지 말고 말해요’를 메시지로 전했다. “프라미스!(약속!)”를 연거푸 외치며 애들에게 실천을 강조하곤 다용도실에 숨겨둔 선물을 꺼내왔다. 어서 이 고단한 연극이 끝나길 바랐다. 짓궂은 아이 엄마는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아이들과 2차례, (나의) 부모님과 1차례, 다 같이 1차례. 부모님과 촬영할 땐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며칠 뒤 동생과 싸우는 첫째에게 물었다.

산타가 카드에 뭐라고 썼더라?

나 카드 안 받았는데?

동생 때리지 말라는 카드 있었잖아.

그거 카드 아니야. 편지야.

(‘논점 바꿔서 질문 뭉개는 게 정치인 못지않네.’) 근데 산타는 어떻게 생겼어?

아빠보다 훠얼~씬 키가 크고 몸무게는 100㎏은 될 걸?!

헐~ 대성공.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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