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가 1년 반 만에 신작 <어린>으로 돌아왔다. ‘물고기 비늘’이라는 뜻을 지닌 <어린>은 전파공학을 전공한 이온이 대형 연예기획사의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기대와 시선에 짓눌려 남극으로 도망치듯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윤태호 작가는 2013년 남극 연구 체험단과 2019년 ‘케이(K)-루트 프로젝트’로 두 차례에 걸쳐 약 120일을 남극에서 보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자기만의 극지에서 자기 비늘이 벗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극지라는 공간 배경에 빗댄 현대 사회 속 우리의 이야기가 될 듯하다. 첫 회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늘을 보며 작가의 전작 <미생>에서 날개 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박 대리(드라마 <미생>에서 최귀화)가 떠올랐다. 하지만 모두가 박 대리처럼 각성(?)해 껍데기를 스스로 벗고 던질 순 없다. 많은 경우 삶 속에서 ‘자기가 결정한 타의’ 속에서 살점이 뜯겨나가기 때문이다.
짓눌리듯 피폐해져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주인공 이온.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뮤지션 이이언이라고 한다. 이온이 이이언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밴드 ‘나이트오프’의 노래 <잠>을 듣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이언은 2013년 남극행 당시 윤태호 작가가 만났던 인물이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떠난 주인공이 어떤 여정을 겪게 될지, 노래를 찾아 음미해 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데/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중략) 따뜻한 꿈속에서/ 조금 쉬고 올 거야.’
서찬휘(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