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통신사가 내비게이션 앱 데이터를 특정일 이후 더는 무과금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제로 레이팅’을 종료한다는 이야기였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당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자회사 소속으로 이전됐고, 공정거래법 준수를 위해 데이터를 무상으로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저는 흥미로운 여론의 흐름을 봤습니다. ‘내비게이션 유료화’라는 제목을 앞세운 기사들이 나왔고, 이용자 이탈이 예상된다고도 이야기했죠. 서비스는 계속 무료로 제공되고, 그걸 구동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이용자 몫으로 돌리겠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니 유료화는 과한 해석입니다. 예를 들어 앱 장터에서 무료로 내려받은 게임을 스마트폰 통신을 활용해 즐길 때를 생각해보죠. 이 게임이 유료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약된 논리가 이목을 끌었을까요?
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서비스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정당한 사용료를 고민한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이 큰 요인일 것 같습니다. 불법 복제된 음원이나 영화, 게임 등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마구잡이로 복제된 웹툰이 유포되고 있고, 수십만 원짜리 소프트웨어도 주워 쓰듯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악성코드에 감염되거나 단속을 위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필요한 상황은 남의 일로 치부됐죠.
꾸준한 유지 보수를 필요로하는 서비스는 많은 자본이 필요합니다. 운영 실태를 관찰 점검하고 보완하는 고정 인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앞서 언급한 내비게이션 서비스만 해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 유지 보수에 매달립니다. 역설적으로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렇게 많은 자원을 필요로하는 서비스들이 오히려 공짜 경쟁에 몰두합니다. 내비게이션뿐입니까. 간단한 계정 개설 절차만으로 놀랄 만큼 다양하고 친절한 서비스들을 쓸 수 있죠. 그 힘의 원천은 트래픽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무료 서비스를 쓰면서 우리가 누르는 화면 곳곳에 광고판과 장터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거의 매년 만우절이면 ‘깨톡이 유료화된다. 톡 한 건당 n원이 과금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집니다. 회사 측은 매번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듬해면 똑같은 패턴의 거짓 정보가 힘을 얻죠. 무료로 이용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됐고, 그 상황이 변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기에 헛소문은 날개를 답니다.
섣부른 추측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고급 서비스들을 오래오래 무료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이용자 트래픽을 모으고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서포터가 되겠다는 벤처 캐피털이 줄을 서거든요. 하지만 표면적으로 무료 일지라도, 그 이면에서 우리는 계속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플랫폼 회사들은 개인 정보나 민감 정보를 덜어낸 비식별 정보를 토대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집단이 됐거든요. 예를 들면 ‘충청북도에 사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 좋아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을 그 누가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명동 거리를 걷는 20대 후반 중위소득의 남성이 어떤 골목으로 발걸음을 틀지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큰돈이 되죠.
앞서 말한 내비게이션에 관한 쟁점을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들을 둘러싼 논쟁들이 좀 더 건설적인 지향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교묘하게 이용자들을 속이는 반칙은 일어나지 않는지,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되는지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잖아요. 내비게이션을 쓸 때 드는 겨우 몇십 메가바이트 데이터를 거저 주지 않게 된 걸 담론으로 삼기엔 집단 지성이 아까워요. 인공지능이 가장 알아내고 싶은 곳에 공짜가 있기 마련인데요. 한층 격해질 공짜의 시대를 헤쳐 나갈 거래의 기술은 어쩌면 유료 서비스 사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잇문계(판교 아이티기업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