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다른 집이 그랬던 것처럼 만두를 빚었다. 다리를 접은 교자상 위에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편 다음, 주전자 뚜껑을 이용해 동그랗게 피를 찍어냈다. 반죽과 밀대 작업은 어른의 몫이었고, 나는 만두피 찍어내는 걸 좋아했다. 주전자 뚜껑의 놀라운 기능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소도 당연히 집에서 만들었다. 핵심 재료인 두부는 삼베로 감싼 뒤 세탁기 옆에 붙어있던 탈수기에 돌려 물기를 뺐다. 빨래용 탈수기가 식품 가공에도 사용된 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설날이었던가. 나는 만두피를 찍어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이번엔 주전자 뚜껑 사이 사이의 공간을 최대한 좁혀 가장 효율적인 만두피를 만들어보겠다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웬걸. 엄마가 “가게에서 만두피 좀 사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만두피는 집에서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제가 만두피를 찍을 수 있잖아요’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으나, 심부름 값 200원에 나는 만두피를 사러 가게에 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 광경이 생생하다. 만두를 빚으며 “이렇게 편하다”, “산 만두피가 더 쫄깃하고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엄마와 할머니 모습 말이다.
돌이켜보면, 만두는 예전부터 만든 것보다 산 제품이 맛있었다. 집에서 빚은 만두도 나름의 매력이 있으나 맛이 균일하지 않고, 특히 밍밍한 소가 불만이었다. 반면, 식품 기술의 발달로 더 위생적이고 다양해진 냉동만두는 소비자의 혀를 유혹 중이다. 맛이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가정식 만두처럼 순한 맛을 내는 제품이 나올 정도로 ‘만두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있다.
최근엔 얇은 피 만두가 유행이라고 한다. 냉동식품이라 다행이지, 예전이었다면 가족들 팔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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