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의 건강수첩
전문의약품에 대해서도 텔레비전 광고를 허용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에게 내년도 업무보고를 하면서 현재 방송법에 따라 금지돼 있는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많은 의사들과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전문의약품 광고가 국민에게 올바른 건강 정보를 주기보다는 의약품의 오남용을 더 조장해 오히려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국민건강은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새로 종합편성채널 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기 위해 방송광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조처를 내놨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전문의약품 광고는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질병 산업에 대한 충격적인 고발을 담고 있는 <질병판매학>이라는 책을 보면, 제약회사의 약품 광고는 적절한 정보 제공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질병 판매 전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약회사의 광고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광고의 절반 정도가 재채기, 탈모 등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것들을 의학적으로 질병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광고는 아무런 질병이 없어도 약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유도한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이 불필요한 약을 먹으면 오히려 몸의 균형을 깨고 건강을 해치는 일임에도 텔레비전 광고 등이 약 사용을 부추긴다는 비판이다.
전문의약품 광고와 관련해 미국의 제약 산업을 고발한 이 책을 인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전문의약품 광고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가 허용돼 있는 나라의 폐해는 미국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유럽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방송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도 전문의약품 광고가 대부분 금지돼 있다. 전문의약품은 두통약 등 일반의약품과는 달리 불필요한 사람이 먹으면 그 폐해가 막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의약품은 의사가 처방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광고를 해도 큰 문제가 없지 않으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광고에서 질병 위험을 계속해 강조하면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에 반응하게 돼, 불필요한 약을 의사에게 요구하게 될 가능성은 커진다. 미국에서도 약품 광고가 환자들에게 질병이나 치료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과는 관련이 없고, 약품 판매량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더욱더 큰 문제는 아무 질병이 없는 사람들도 텔레비전을 통해 봐야 할 전문의약품 광고 비용을 환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전체 건강보험재정 지출 가운데 약 30%를 약품 비용으로 쓰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약 2배나 높게 환자들의 약값 부담 비중이 큰 편이다. 물론 약값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도 많다. 정부는 일부 방송사를 위한 전문의약품의 방송 광고 허용에 앞장서기보다는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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